한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남북미 3자간 정상회담까지 언급할 정도로 북핵문제 해결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나라 사정을 보면 앞으로의 일들을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당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존 볼턴 전 유엔 미국대사를 백악관 NSC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국무장관 후보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 니키 헤일리 주 유엔대사로 이어지는 ‘매파 3인방’의 구도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대다수다. 존 볼턴은 NSC보좌관으로 내정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리비아식 해법’으로 불리는 북핵 완전 제거 후 보상을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 점은 앞으로 북한과 미국과의 협상 국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클 걸로 보인다.

그런데 단지 ‘매파’인 것만이 문제일 수는 없다. 이제는 전 NSC보좌관이 된 허버트 맥매스터도 ‘강경파’로 분류됐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함께 묶어 군 출신 3인방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을 제어하는 ‘어른의 축(Axis of Adults)’을 형성했다고 해설해왔다(켈리나 맥매스터 대신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을 넣는 경우도 있고 아예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즉, 중요한 것은 강경파냐 온건파냐 보다도 불확실성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존 볼턴의 등장은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 존 볼턴은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한 인물이다.

존 볼턴은 이른바 ‘네오콘’으로 불리는 가치에 충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적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존 볼턴의 특징은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독선적인 방식으로 관철하려 한다는 데에 있다. 한국 정부도 과거 존 볼턴과의 접촉에서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신임보좌관으로 임명된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 대사. (연합뉴스/로이터)

종합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본말전도를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전쟁을 선택한다기 보다는,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구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 존 볼턴은 NSC의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자기 위주의 조직을 꾸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측근들에게 “볼턴과는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는 소식 역시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존 볼턴이 그래도 NSC보좌관에 내정된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 한 것은 다 지나간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온을 떠나 트럼프 대통령의 ‘캐릭터’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닌가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말’을 하거나 엇박자를 내는 인사는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다는 걸 고려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꼭 존 볼턴의 ‘캐릭터’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강경파들의 부상으로 앞으로 미국의 주요 대외정책에서 연이은 파열음이 예고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 핵 합의와 연계된 중동문제가 그렇고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한 태도의 변화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중국에 600억 달러 규모의 ‘관세폭탄’을 안기면서 G2 간의 무역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 문제이다. 현지시간 22일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 유예 대상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는 좋은 사람이자 내 친구다”, “그동안 일본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미국을 이용해 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미소였다. 하지만 이젠 그런 날은 끝났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일본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자체보다도 이후 미일FTA 협상 등의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된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발언이 아베 신조 내각에 미치는 영향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고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선물 공세까지 펼치며 굴욕을 감수하는 외교전을 펼쳤음에도 사실상 성과가 없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대북 압박의 강화를 모색하며 동아시아 외교를 주도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한순간에 소외될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은 덤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내부정치와 관련해서도 사학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2일 대국민사과를 한데 이어 25일 집권 자민당 당대회에서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드리겠다”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24일 밤 전국간사장 회의에서도 내년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를 우려한 비판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베 신조 총리의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정책의 실패는 불에 기름을 붓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땔감을 던지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25일 도쿄(東京) 신주쿠역 앞에서 시민들이 '반(反) 개헌·반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도쿄 교도)

아베 신조 총리는 개헌 일정을 서두르면서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런 정국에 대응하려고 한다. 25일 자민당 당대회에선 헌법 9조에 자위대 보유 근거를 명기하는 형태의 개헌안이 공개됐다. 22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 언론이 보도한 북일정상회담 추진 여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답해 굳이 부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재무장과 납치 일본인 문제는 일본 사회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동아시아 안에서 언제까지나 ‘가해자’의 역할을 떠맡기보다는 일본인도 한 사람의 ‘피해자’로서 남에게 무언가를 당당히 요구하며 보통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수면 아래 잠복해있다는 것이다. ‘포스트-아베’로 분류되며 여론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인사들이 당 개헌안에 찬성 입장이거나 이보다 더 나아간 사실상 군대를 보유하는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다.

개헌은 국민투표로 완성된다. 아베 신조 정권의 인기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결국 아베 신조 총리의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반대파들의 주장이 힘을 얻으면 개헌은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반전은 새로운 총리가 ‘개혁’의 이름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일본의 재무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는 사실가지 감안할 때, 오히려 아베 신조 정권의 위기가 지지부진한 일본 개헌 논의의 어떤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동아시아 각국 입장에서 대외정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게 된 북핵문제 역시 일정한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 입장에선 그렇잖아도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더 어렵게 꼬여버릴 가능성이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다른 나라들의 혼란을 팔짱끼고 즐기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