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됐다. 정치보복이고 쇼라는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자유한국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를 제외하면 큰 충격을 받은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도 구속 직전 제법 나라를 걱정하는 듯한 투의 심경을 적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성명 시점이 “새벽”으로 돼있는 걸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발부 시점이 더 늦을 걸로 예상하고 미리 문안을 작성한 듯하다. 실제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생각보다 빨리 했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썼지만, 검찰의 구속영장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런 공적 태도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들은 삶의 방식 전반과 밀착돼 있는 형태이다. 정계 진출 자체가 다스 지분의 차명 소유와 연관돼있었고 도곡동 땅은 이후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종잣돈으로 활용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에도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같은 방식의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심지어 이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그 혐의로 구치소에 들어가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걸 진지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검찰이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을 걸로 추정되는 범죄 중 가장 분명한 대목들일 뿐이다. 앞으로도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더 진전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여론은 분노하거나 환호하면서 또 안도할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괴물’을 감옥에 가둔 이후 우리의 삶은 평온한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을 더 넓은 의미에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대단히 비정상적인 행태로 일관해 우리 공동체에서 분리되었지만, 사실 두 사람을 권력에 핵심에 올려놓은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들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이전의 민주정부가 내세운 어떤 ‘가치’들이 개별 유권자들의 삶에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인식의 반동형성이었다. ‘정치개혁’과 같은 허울 좋은 명분 보다는 실질적인 부의 증대를 이뤄줄 지도자를 갈망한 것이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을 둘러싼 의혹은 이미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국면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여당은 본선에서 이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두 가지 ‘예방주사’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유권자들이 도곡동 땅, 다스, BBK 주가조작 등 의혹이 이미 한나라당 경선에서 제기됐던 문제라 새롭지 않다고 느낀 거고 두 번째는 “실력도 없으면서 착한 척 하는 정치인 출신보다는 현실에서 때가 묻은 기업가 출신이 낫다”는 냉소적 정치관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후 박근혜 권력이 탄생한 것은 이명박 정치의 ‘사적 이익 추구’에 질린 유권자들이 ‘공적 가치’를 과거 박정희 독재의 경험으로 치환하는 퇴행을 감행하면서 가능했다.

두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단죄는 이런 정치 그 자체와 이것을 요구하고 또 용인한 우리 스스로의 정치관에 대한 청산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를 금전적 이익의 분배 수단으로 보거나 정치인 또는 정책을 상품으로 다루는 시장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버림으로써만 가능하다.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도곡동 땅, 다스, BBK 주가조작이라는 ‘이명박의 특수성’을 벗어나 ‘이명박의 보편성’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금전적 이익 분배 외의 부분에서 이명박 정권이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고 평가해야 ‘이명박 정치’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명박 정권이 정치의 영역에선 반대파를 사찰하고 탄압하는 원초적 방식의 해결책을 즐겨 사용하였지만 경제의 영역에선 이른바 ‘글로벌스탠다드’를 거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애초 경제를 살리겠다며 747공약과 한반도대운하론으로 요약되는 고전적 경기부양책을 내세웠지만 이러한 구상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쳤다.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덮쳤기 때문이다.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는 2008년의 이 사건 덕에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던 메가뱅크 등 금융산업발전론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당국의 환율개입은 오히려 이들이 신념처럼 떠받들던 ‘낙수효과’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버렸다. 대기업에 더 이상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명박 정권은 정운찬 서울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세워 ‘동반성장론’을 내놓고 ‘공정사회’를 국정과제로 제시하는 ‘좌클릭’을 감행했다. 금융산업발전론 대신 등장한 것은 핵발전소를 국외에 수출하겠다는 걸 핵심으로 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2008년 위기 이후 이른바 ‘네오-케인지안’으로 유턴(?)한 미국의 열화버전을 보는 듯 했다.

사실 ‘글로벌스탠다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전의 민주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가능케 한 핵심 요인 중 하나인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외환위기 극복 이후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부동산 부양을 위한 규제완화를 단행한 김대중 정권의 정책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메가뱅크 구상’은 노무현 정권이 구상한 동북아금융허브론을 일부 수용한 결과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나 복지의 시장화 역시도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앞서의 민주정부였다. 공기업 민영화는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추진했고 복지의 시장화는 애초 ‘생산적 복지’의 형태로 도입된 제도를 노무현 정권이 ‘사회투자국가론’으로 안착시키면서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유연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직후 ‘IMF 플러스’ 협상을 통해 정리해고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였고 노무현 정권은 이 틀 안에서 노동정책 수립을 모색하며 ‘네덜란드 모델’ 등을 상정해 2006년 비정규직법 통과에 이르게 됐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여러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결국 이 시기에 세계적으로 이른바 ‘신자유주의’로들 부르는 정책적 믿음이 ‘글로벌스탠다드’로서 맹위를 떨쳤다는 사실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시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여파인 유로존 위기 등을 거치면서 사실상 말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뉴-노멀’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등장한 문재인 정권이 꺼낸 대안은 ‘글로벌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먼 소득주도성장이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평가에 기반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미래를 과거의 일에서 찾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건과 상황을 통해 대안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마침 정치권은 개헌을 논하고 있다. 개헌 논의 과정은 서로의 이해득실만 셈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둘러싼 백가쟁명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청와대는 5월 초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고 했다. 미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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