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SNS에 성폭력 피해를 알려 심각성을 지적하는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복수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고, 모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보좌관이 성추행 의혹으로 옷을 벗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언론을 통해 기사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과도한 정치권 미투 취재 경쟁에 국회 보좌진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자들이 의원실 보좌진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미투할 게 있으면 나한테 제보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는 소식이다. 국회 보좌진들의 익명 페이지인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 미투가 발생하자 일부 기자들이 댓글을 달아 휴대전화와 이메일주소를 남기기도 했는데, 보좌진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료화면

한 보좌직원은 해당 페이지에서 기자들을 향해 "그동안 여성 보좌진을 어떻게 대했는지나 돌아보라"고 일침을 놨다. 이 보좌직원은 "미투 폭로글에 기자들이 본인 메일주소 남기는 거 보면 헛웃음이 난다"면서 "업무망만 접속해도 출입 기자단의 휴대전화와 이메일주소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대나무숲에 글을 올렸겠느냐"고 말했다.

이 보좌직원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한테 특종 찾으려 들지 말고, 당신들이 그동안 여성 보좌진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면서 "시간이 남으면 당신네 회사 내부 문제도 제대로 취재 및 공론화하라"고 말했다.

이어 "보좌직원은 물론이며 의원한테도 당당하게 갑질하던 분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 동앗줄 내려주겠다고 하는 게 어이 없다"면서 "일부 그러한 기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은 절대로 선의로 덧글을 남긴 거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려거든 그냥 로그아웃하라. 최소한의 예의는 바라지도 않는다. 눈치라도 갖추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좌직원은 "미투운동을 보며 '올커니 특종이네'하는 심보로 자세한 얘기를 알려달라는 기자들"이라면서 "우리 보좌진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작자들 중 하나가 바로 당신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너보다 나이 10~20살 많은 보좌관, 의원한테 선배선배하면서 반말 섞어가며 갑질하고, 국회의원 갑질 제보했던 내 동료는 너희 약속에도 불구하고 신원이 공개돼 소송을 당했다"고 전했다. 또한 "보좌관한테 기업 조져서 광고 실어달라고 하질 않나, 연말연시에 너네가 강매하는 쓰레기 같은 연보, 사진첩 강매좀 시키지 마라. 후원금 아깝다"고 비판했다. 이 보좌직원은 "여기에 미투 올리는 분들, 오랜 보좌진 경험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자들이 특종 터뜨리고 쌩이다. 신원보장 안 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지난 6일에는 국회 성폭력을 보도하기 전에 언론사 내부의 성폭력 실태를 밝히라는 충고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보좌직원은 "언론인 여러분, 당신들께서도 할 말 많은 거 다 알고 있다"면서 "국회 내 성폭력 밝혀주려 하지만 마시고, 여러분도 털어놓으시라.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투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언론사 어느 부장이 그랬는지는 안 밝히셔도 된다"면서 "단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털어놓으시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적었다.

지난 19일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소속 보좌진 일동은 "기자들이 자극적인 소재 찾기에 혈안이 돼 취재라는 이름의 무례한 폭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명백한 2차, 3차 가해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우리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간접적인 폭력 행위와 발언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경고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기자들이 국회라는 업무공간에서 당사자에게 제보를 요청하는 것은 미투운동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행동"이라면서 "언론이 미투운동 보도경쟁으로 취재원과 미투 피해자에 대한 존중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 보좌직원은 "언론이 미투운동 과정에서 해야할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