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청와대가 20일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발의안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20일부터 22일까지 기본권, 지방분권, 대통령 권한 부분 등과 관련된 내용을 3일에 걸쳐 국민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추진을 '개헌 쇼'라고 폄하하며,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개헌에 대한 책임은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러한 비난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 추진의 효과를 간과한 주장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21일자 조선일보는 <청와대 '改憲 쇼' 강행이 바로 제왕적 대통령 모습> 사설에서 "이미 다 마련돼 있는 개헌안을 이런 식으로 쪼개서 발표하는 것은 개헌안 공개의 진짜 의도를 보여준다"면서 "정말 개헌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대 '쇼 이벤트'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는 개헌안을 조문 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바꾸겠다'는 식의 보도 자료 형태로 공개했다"면서 "헌법 조문은 글자, 수식어, 심지어 토씨 하나에도 의미와 파장이 달라진다. 청와대는 지금껏 개헌안 조문과 내용에 대해 공청회 한번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개헌이 되게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럴 수 없다"면서 "그래 놓고 야당이 거부하면 '반개헌 세력'으로 비판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공개한 내용 중에는 1년 내내 토론해도 국민적 합의가 쉽지 않은 것들도 있다"면서 "'헌법 전문에 부마 항쟁과 5·18민주화 운동, 6·10 항쟁의 민주 이념을 명시한다'고 한 것을 놓고는 이날 당장 좌파·우파 단체들이 충돌했다. 공무원 파업권, 검사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삭제 등도 국민 생각이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은 행정부 수반이나 정파 대표가 아니라 국가원수 자격으로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라면서 "그에 맞게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행사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 편과 개인 취향에 맞춰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개헌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헌법은 그 유래 자체가 국회에 속하는 것"이라면서 "개헌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 강행은 국회의장이나 여당 중진 의원들조차 반대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정의당조차 반대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청와대는 밀어붙인다. 그것도 진심으로 개헌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는 척'을 하겠다는 것이다. 탄핵이란 국가적 비극과 위기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는 국민적 염원이 이런 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여야는 밤을 새워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고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개헌안에 합의해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국민 앞에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개헌이 돼도 현 정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개헌을 위해선 '제왕적 대통령제', '지방자치' 외에 어떤 논란거리도 추가로 만들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러한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추진의 효과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 국회는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꽤 많이 부여 받았다. 지난해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했고, 현재도 헌정특위가 새롭게 구성돼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국회 논의는 사실상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가장 큰 이유는 자유한국당의 노골적인 반대 때문이었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개헌 국민투표가 오는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면 투표율이 오르고, 그럴 경우 선거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회에만 논의를 맡겼을 때 언제 합의가 될 지 미지수인 상황이 지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후에야 국회가 비로소 유의미한 개헌 논의에 나섰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어찌됐든 심사와 찬반표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반대표결을 통해 대통령 안을 부결시킨다고 해도 지방선거에서 개헌 부결의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좋든 싫든 개헌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단 얘기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개헌 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촉매'의 역할을 문 대통령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발의 추진에 대해 촉매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靑 개헌안 前文·기본권 공개…국민적 합의 가능한 案인가> 사설에서 "청와대가 의욕만 커서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모은 것인지 의문스럽다"면서도 "그럼에도 대통령 개헌안을 놓고 각계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져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더라도 의미가 없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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