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넘버원은 때 아닌 전쟁물 러시 속에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드라마이다. 남자가 봐도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소간지 소지섭의 눈빛이 기대됐고, '아버지의 집' 이후 최민수의 또 한 번의 따뜻한 목소리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못봤기 때문에 많은 비교에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로드넘버원이 접근하고자 하는 곳이 반전이라는 점만은 1,2회를 통해서 감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로드넘버원의 전투신을 말하는데, 한 편 제작하는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가 표현할 수 있는 전투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편당 수십억을 쏟아 붓는 미국드라마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래서인지 로드넘버원은 실감나는 전투신보다는 실감나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분부분 멋진 장면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다렸던 최민수의 역할은 중대장 이전에 큰형이고 아버지 같은 케릭터이다. 실제로 한국전쟁 발발 당시 그런 군인이 있었기를 바라지만 그동안 읽었던 소설 속에는 아쉽게도 최민수 같은 장교는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은 단지 믿고 싶어서 믿겨지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작정 믿기로 한 최민수의 이미지는 소지섭, 윤계상, 김하늘이 엮어가는 애증의 완충작용을 해주고 있다
그런 절충 속에서 그나마 찾은 것이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떼어내는 작업이다. 군복에 태극기를 달고 있고 로드넘버원의 모든 배경이 한국이지만 그 내용은 비단 한국이 아니더라도 어디서건 드라마 혹은 영화로 담아낼 수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즉, 6.25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통해서 전쟁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제작진이 스케일이 커서가 아니라 아직도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이념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2회에서 윤계상이 김하늘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미국 갱스터 영화에서는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윤계상이 단지 결혼 전날, 남자로서 또 군인으로서 이중으로 배신을 당했다는 감정만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눌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 눈앞에서 전우가 총과 대포에 쓰러지는 것을 처음 본 후 발생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봐야 할 것이다.
절망에 놓인 채 총을 든 사내들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 위험은 바로 인간 존엄의 소멸이다. 밀려 내려오는 탱크에 절망해서 민간인의 안위 따위 살필 틈이 없다는 대대장과 다른 중대장의 말도 전시에는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서 남아 민간인이 피난할 시간을 벌겠다는 최민수의 결심은 로드넘버원이 한국전쟁의 도화지에 무엇을 그릴 것이냐는 의도를 대신해서 말해주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며 큰절을 올리는 장면은 1,2회 통틀어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인 것처럼 로드넘버원 내면의 주인공은 최민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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