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있던 날은 공교롭게도 시사프로그램 <썰전>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방영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대한 발언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카’를 위한 헌정에 매진해 온 김어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 검찰소환에 대해서는 두 프로그램의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여전히 이슈 해석에 대한 효율성은 <썰전>이 <블랙하우스>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썰전>이 갖고 있는 중립성, 형평성을 <블랙하우스>는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체 언론의 지형을 놓고 보자면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굳이 모든 시사 프로그램에 진보와 보수라는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의지로 보인다.

물론 과거 <썰전>의 형식이 재미와 흥미를 줄 때도 있었지만 근래의 <썰전>은 뭘 해도 미지근한 느낌을 줄 뿐이다. 그것이 익숙함 때문인지 아니면 출연자 때문인지는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 해답을 마치 <블랙하우스>에서 보여주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마침 15일 방송에서 두 프로그램의 차이 혹은 승부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S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JTBC 시사프로그램 <썰전>

<썰전>과 <블랙하우스>는 15일 모두 MB 검찰소환과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뤘다. <썰전>은 뭘 해도 유시민과 박형준 두 패널이 다 알아서 하는 구조였고, <블랙하우스>는 주제에 따라 패널들이 달라졌다. MB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북미정상회담의 패널 구성은 <블랙하우스>의 완승이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호사카 유지 교수, 김지윤 박사, 안드레이 란코프 등이 출연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의 평화와 정치 상황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들의 입장과 전략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잡학박사 유시민이 버티고 있는 <썰전>의 내용이 현저하게 부족했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외교분야의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자 현 정부의 외교안보 특보의 존재감과 무게감은 적어도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이슈에는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귀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일본계인 호사카 유지의 입으로 듣는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추진에 당황스러운 아베 정권의 속사정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덤으로 얹어주며, 러시아 사람이 평가하는 러시아와 북한의 진단은 언론에서도 쉽게 듣지 못한 정보였다.

S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예를 들면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가 말한 북한의 경제 발전 정도라든가, 호사카 유지 교수가 말한 북한의 자본주의화 경향은 사실상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언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오죽하면 듣고 있던 김어준이 “우리가 제일 소식이 늦네요”라고 할 정도였다.

어쨌든 북미정상회담이 갖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거기에 따라 <블랙하우스>는 통 큰 베팅을 해 패널을 구성했다. 그것이 단지 <썰전>과 경쟁해야 하는 후발주자여서가 아니라 이슈와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유연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이 기여할 수 있는 평화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사실 이런 정도는 크다고도 말해선 안 될 정도다.

아직 <썰전>과 <블랙하우스>의 실제 시청률에 큰 차이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블랙하우스>가 장차 <썰전>을 압도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된다. 유시민 대 김어준의 구도가 아니라 그 외의 요소에서 차이가 너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썰전>은 변화 없이 <블랙하우스>의 도전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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