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은어다.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문화를 지칭한다.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자 '태움'이 원인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여전히 바뀐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간호사연대 소속 최원영 간호사는 16일 CBS라디오'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장은 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일단 현장에서는 오히려 그(사망한) 간호사가 '좀 이상한 사람이었더더라', '예민하고 일을 진짜 못했다더라'라는 식의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변화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는 간호사연대 NBT 주최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한 달 동안 사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를 했다고 밝힌 최 간호사는 "해당 병원의 경우 같은 중환자실인데도 제가 일하는 병원보다 담당 환자 수가 1.5배 정도 많았다"며 "그런 업무 부담 같은 게 해결되지 않으면, '태움'은 개인이 마음을 다스려서 혹은 성격을 개조해서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게 아니다"고 말했다.

해당 병원의 간호사들은 '반말 금지', '인격모독 금지' 등의 문구가 적힌 배지를 달고 근무하고 있다. 해당 병원의 노동조합이 간호사들에게 '태움 반대' 배지를 배포한 것이다. 대한간호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태움의 가해자로 직속상관인 간호사가 30.2%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이에 따른 간호사들의 자정 노력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최 간호사의 설명이다.

최 간호사는 "그건('태움반대' 배지) 정말 부차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배고프다는 사람한테 밥 안 주고 계속 배고픔 근절 배지를 단다든가 이러면 해결이 안 된다"라며 "선배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자기가 해야할 일이 버겁고, 담당 환자 수를 전혀 줄여주지 않으면서 신입을 가르치라고 하니까 언제 시범을 보여줄 수 있겠나"라고 강조했다.

최 간호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교육기간 두 달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신입 간호사는 자기 실수로 환자가 잘못될까봐, 소송에 걸릴까봐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환자가 죽을 뻔했다', '미쳤냐, 제정신이냐'라는 얘기를 듣고, 교육을 해주는 사람도 자기 환자를 온전히 다 보며 버겁게 일 하면서 신입간호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태움'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국회에서는 이른바 '태움 방지법'으로 불리우는 의료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지난 19대 국회부터 줄곧 발의되고 있음에도 통과되지 않아 다수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관련 법안을 살펴보면 2016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정춘숙 민주당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안이 있다. 최근에는 12일 신창현 민주당 의원이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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