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못하는 서양인에게는 귀엽다고 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한국말 못하는 동양인이나 흑인에게는 불친절하거나 무관심하다. 유색인종이면서 한국인이 가진 인종차별 혹은 서양사대주의는 21세기가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한 후진성을 대표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쉽게 멸시하는 중국에서 온 빅토리아가 그런 인식을 싹 바꿔줄 것 같다.

걸그룹 f(x)의 리더이자 멤버 중 유일하게 20대인 빅토리아는 그동안 어떻게 예능을 참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등장할 때마다 놀라운 예능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예능감이라기보다는 언어소통의 문제로 벌어지는 해프닝에 가까운 웃음에 더 가깝다. 빅토리아는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뭘 시키거나 물어보면 대단히 진지하고 열심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웃음을 준다. 복이라면 복을 타고난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머쓱함을 대신해 보이는 애교가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준다. 그동안 애교는 소녀시대 써니의 전매특허였는데 이미 청춘불패와 이번 주 우결 등 예능 고정출연이 시작된 빅토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써니와 빅토리아의 애교는 분명 성격이 다르지만 언어의 문제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좋은 무기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라디오스타의 빅토리아를 보면서 나름의 별명을 하나 붙여봤다. ‘아무 때나 애교’라는 긴 별명인데 약간은 백치미가 가미된 빅토리아의 애교는 예쁜 얼굴 덕에 정말 아무 때나 봐도 즐거울 것만 같다. 오히려 예닐곱 살 더 어린 동생들보다 더 애교가 많아서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기야 f(x) 다른 멤버들 중에 제시카 동생 크리스탈은 언니를 빼닮아서 매사에 좀 시크한 편이고, 중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엠버가 빅토리아처럼 애교를 보인다면 나쁘진 않아도 조금은 낯설 것만 같다. 어쨌든 빅토리아의 애교에 독설과 산만의 대명사 라디오스타 MC들이 모두 넋을 잃는 모습이었다.

독설의 대가 김구라조차도 빅토리아의 애교를 은근히 바라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고, 중국어 실력이 제법인 김국진은 바로 옆의 빅토리아의 한마디 동작 하나에 아빠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결국 빅토리아의 애교가 라디오스타 악동 MC들을 녹다운시킨 것이다. 하긴 그쯤의 나이에는 애교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소녀시대가 비운 자리에 예상 외로 빅토리아가 새로운 예능의 꽃으로 확 피어나고 있다.

걸 그룹은 요즘에도 계속해서 데뷔가 이어질 정도로 한국 가요계의 인기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슈퍼주니어, 2PM에 이어서 f(x) 그리고 곧 첫 선을 보일 미스에이라는 그룹에도 모두 외국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남자 아이돌과의 비교는 좀 어렵겠지만 닉쿤도 초기 한국말이 아주 서툴렀던 때가 지금보다 더 귀여웠던 것을 생각하면 외국인 특히 동양권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많이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빅토리아의 파이팅을 기대해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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