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지면에 왜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이런 고민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쓰기가 학문의 실천이자 의식의 표현인 학자에게도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글은 자신의 철학, 이념과 직결되어 있다. 글쓰기는 일종의 정치이자 장치다. 그 선택은 연구자의 정체를 필수적으로 구성하며 또한 전제한다.

중앙일보 JTBC 회장 홍석현이 꾸린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가 다름 아닌 <중앙일보> 지면에 최근 긴 글을 썼다. ‘김민환의 퍼스펙티브’. 자신의 관점이나 견해를 뜻하는, 혹은 전망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칼럼에 자신의 이름을 달았다. 인터넷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 쓰는 이런 잡글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미래 정치의 아젠다인가? “‘1988년 체제’ 허물어야 MBC가 산다”가 그 제목이다. 형식·배치도 그렇지만, 글의 결론도 흥미롭다. 이상하다. 역사적으로 공인된 87년 체제도 아니고, ‘1988년 체제’라?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다. 비슷한 공부를 하는 저자도 사실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아무튼 그 체제를 허물어야 MBC가 산다? 문제 진단이고 해법 제시다.

[출처: 중앙일보] [김민환의 퍼스펙티브]'1988년 체제' 허물어야 MBC가 산다

김 교수의 주장은 간결하다. 문화방송 MBC는 원래 ‘민영방송’이었다. 그러다가 1988년 새로 만들어진 방송문화진흥회를 최대주주로 한 공영방송으로 바뀐다. ‘88년 체제’가 그렇게 들어서는데, MBC를 30년이 된 이 낡은 틀에 계속 묶어두는 게 맞나? 안 된다. 체제를 해체하고, MBC를 해방시켜야 한다. 이런 이야기다.

‘88년 체제’는 MBC를 “공영의 허울에 가두고 사실상 정치권력의 식민지로 만들었다”라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 낡은 틀을 허물어야 MBC가 재생할 수가 있다. “민영화 방안을 검토할 것인지 등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자는 엄기영 전 사장의 말을 인용하며, 김 교수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방문진 이사들은 그들을 추천한 정치권력의 대리인 역할에 자족할 것인가?” “아니면 MBC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할 것인가?

한국사회를 위험에 빠트린 ‘기레기’들의 적폐를 당장 청산하라. 해직된 언론인들을 원래의 자리에 복직시켜라. 정상의 저널리즘을 복구하고, 공영방송을 자본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라. 언론자유 침탈의 진상을 조사하라. 국가장치와 정권에 정확히 책임을 물으라. 법과 제도를 개선하라. 그럼으로써 민주사회가 다시는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이런 명령들로 가득 찼던 촛불혁명이 끝난 지 1년이 겨우 지났다. 엉망진창인 상황은 아직 많은 게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촛불의 명령을 따라 MBC 정상화에 막 시동이 걸린 2018년 3월. 자유언론 탄압과 민주교통 침탈의 긴 겨울을 넘기고, 우리는 언론개혁의 봄을 겨우 열기 시작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현실정치에 뛰어든 홍석현의 신문 <중앙일보>에서, 그와 뜻을 같이하는, 한 언론학자의, ‘MBC 민영화’ 논리와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가? 그의 ‘퍼스펙티브’는 존중 받아야 하나? 그의 의견은 차이로써 인정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침묵으로 봐주는 게 옳은가?

만약에 소수의견으로 제출된 거라면, 당연히 그러는 게 맞다. 그것이 지배적 통념을 거역하는 용기 있는 학자의 이견이었다면, 기꺼이 그랬을 것이다. 허나 지대한 여론지배력을 지닌 <중앙>의 지면에 실린 정통주의 도그마에 대해서도 나는 관대해야 하나? 명망 지닌 학자의 일리 있는 주장으로써 이해해 주는 게 독자의 몫인가?

MBC 신사옥 전경(MBC)

아니다. 그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지배적 매체를 통해 설파되는 주도적 논리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론이 제격이다. 미래를 전망하는 권력의 시각에서 기술된 글에는 정파적 글쓰기로서 작성된 비판의 추궁이 합당하다. 그럼으로써 시각의 균형을 맞추고 그래서 적극적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나는 왜 이런 잡글 쓰기를 고집하는가? 글쓰기는 정의의 실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학자의 글은 권력 대변의 수단이고 채널이기도 했다. 'MBC 민영화'는 누구를 위한 길인가? 누가 ‘MBC 민영화’를 꿈꾸나? 그 구호는 공영방송체제와 미디어생태계, 한국 민주주의의 어떤 상에 기반하며 어떤 전망과 접합되어 있나? 어떤 미디어 학자들이 어떤 조건에서, 무슨 사상을 갖고, 어떤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이를 주창해 왔던가?

‘MBC 민영화’의 이념체제, 언설구조는 뿌리가 대단히 깊고 단단하다. 공영방송이 탄생하고 불과 3년도 채 안된 1990년 이미 방송구조개편의 일환으로 제출된 케케묵은 지배서사일 뿐이다. 당시 ‘방송제도연구위원회’는 방송문화진흥회 소유주식 70% 지분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매각하는 식으로 MBC를 ‘민영화’할 계획을 마련했다.

그 후 끊이지 않고 기회 때마다 반복해 주창된 ‘MBC 민영화’론. 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공영방송체제를 와해하고 재사유화하려는 기득권의 반동 프로젝트. 그것은, 2000년대 들어, 사회공공성의 근원적 와해를 꿈꾸는 자본국가의 프로그램으로 흡수되어, 국가의 지배효력을 높이고 자본의 축적이익을 증대하는 아이디어로서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뉴라이트 MB정권이 절호의 기회였다. 서울시장 때부터 권력 잡으면 MBC를 반드시 ‘민영화’시키겠다던 각하가 집권했다. 국가정보원이 당장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마련한다. 공영방송체제 해체의 마스터플랜을 실행에 옮긴다. 3단계 시나리오의 최종목표로 제시된 건 바로 ‘민영화’로의 소유구조 개편이었다. 무서운 지배전략. 모의.

"문화방송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다공영 일민영’ 체제를 ‘일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해 시장원리를 확립할 것"이다. 정수장학회의 지분 매각, 인수자 공모가 구체적인 방도, 절차로 제시된다. MBC 기획홍보본부장 이진숙이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을 만나 MBC ‘민영화’을 논의할 것이다. 저항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거의 성사될 뻔 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음모. 우리가 싸워 겨우 막아냈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있었다. 검찰이 MB씨의 MBC 장악과 관련하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재철 MBC 전 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2010년 사장 취임 후 국정원으로부터 앞선 문건을 전달받아 실행한 의혹을 받는다. 그런데, 작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출석했을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공영방송이라 정권에 휘둘려 왔기 때문에 민영화돼야 합니다. MBC 민영화가 제가 바라는 꿈입니다.” “MBC 민영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이슈를 그대로 놔두고선 국민은 공영이란 이름으로 방송을 망치는 언론노조의 영원한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극우의 목소리와 다른 듯 통한다. ‘민영화론’은 이렇게 집요하다. 일종의 집착증이다.

김 교수의 퍼스펙티브는 뜬금없는 일회적 기고가 결코 아니다. 이런저런 이데올로기와 뒤얽히며 강고해진 지배담론의 지속적 반복, 조직적 재연. 기득권의 오랜 소망을 담은 낡은 독사(Doxa)의 회귀. 홍석현 회장의 <중앙일보>가 재현한 30년 된 공영방송해체의 오랜 소망에서 수상한 권력의 회귀의지를 감지하게 된다. 위험한 전망을 읽어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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