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어준 씨가 ‘미투운동’에 대해 한 발언이 다시 논란이다. 김어준 씨는 11일 공개된 팟캐스트 ‘다스뵈이다’ 방송에서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폭로로 방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라지고 있다며 ‘공작’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다시 했다.

그런데 전체 맥락을 볼 때 김어준 씨의 이 말은 이미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한 일종의 수습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 씨가 JTBC 보도 등을 언급하며 “한쪽 진영만 나오잖아, 특정 영화 출신 배우만 나오나. 근데 그건 지금 얘기하면 안 돼요. 얘기할 때가 오겠죠. 이미 나는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하면 안 돼요”라면서 “그게 분명하게 한쪽에 몰려있는 건 맞아요. 근데 그거하고 별개로 이 폭로가 사회 인식을 바꾸고 그 다음에 시스템 개선으로 나가는 효과를 먼저 봐야 해요”라고 말한 대목을 보면 그렇다. 자신의 지난 발언을 철회하거나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서도 행위의 부적절성에 대한 지적을 원론적 수준에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려니 다소 발언이 복잡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떻게 보면 ‘유체이탈 화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어준 씨의 발언은 곧바로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12일 지면에 <김어준 또 인터넷방송서 ‘미투 공작說’>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팔면봉’이란 코너에서 “음모론으로 먹고살던 나꼼수 김어준, 나꼼수 동료가 ‘미투’ 걸리자 음모론. × 눈엔 ×만 보인다?”라고 썼다. 김어준 씨 발언 중 자신들에 유리한 부분만 확대해서 다룬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보도를 ‘사실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어준 씨가 미투운동을 이용해 공작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재차 말한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12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
12일자 조선일보 지면

특히 조선일보가 김어준 씨에게 ‘가해자 주변인’이란 규정을 들이댄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김어준 씨는 현재 의혹 제기의 당사자가 돼있는 정봉주 전 의원과 각별히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집권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앞두고 있는 전직 국회의원과 인기 방송인이라는 조합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선 또 하나의 권력일 수밖에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만화 대사도 있다. 모든 의혹 제기에 전적인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상황에 맞는 처신을 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가해자(가해지목인이라고 해도 좋다)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누군가 피해사실을 폭로 등의 방법으로 호소하였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과 그 주변인들, 또는 소속 조직의 대응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배우 오달수 씨의 사례이다. 오달수 씨는 자신을 겨냥한 폭로가 나오자 처음에는 성폭력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그럼에도 새로운 피해 사례가 보도되자 다소 억울하다는 뉘앙스를 포함한 사과 입장을 밝혔다. 좀 더 성실한 입장 표명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사건 당사자인 오달수 씨의 입장보다 문제인 것은 그 주변인들의 태도이다. 오달수 씨의 전 매니저와 ‘친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나타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글을 쓴 것은 문제였다. 이 글들의 내용은 오달수 씨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아니며, 성폭력을 저질렀더라도 권력관계를 이용해 잘못을 반복하는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문제를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대립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당사자는 대개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종종 피해가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이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가해자 또는 가해지목인이 스스로 사건에 직면하고 자신이 한 일에 맞는 적절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또 앞으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한 문제가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의 사례에도 있다. 민병두 의원은 성폭력 행위가 있었는지 자체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한 입장이지만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보도에 의하면 민병두 의원은 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아무런 기득권 없이 자연인의 입장에서 진실을 규명하여 명예를 되찾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여간 민병두 의원이 스스로 밝힌 바만 보면 잘못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잘못이 있다면 그게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정도에 이른다는 것인지 해석이 어렵다. 어쨌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자격은 민의에 따를 수밖에 없고,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무적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는 만큼 스스로 사퇴를 하겠다는 걸 두고 불필요한 논란을 벌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소 의문이 남는 것은 그 가족들의 반응이다. 민병두 의원의 배우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병두 의원이 평소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권력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병두 의원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 역시 소셜미디어와 기사 댓글란 등을 활용해 유사한 입장을 남겼다. 피해자가 밝힌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저지른 행위에 비해 과도한 비난을 받거나 정치적 쟁점이 확대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응은 본질적인 차원에서 앞서 오달수 씨 주변인들의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은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후보 경선 출마를 앞둔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례이다. 물론 박수현 전 대변인 사건은 앞서의 사례와는 다르다. 이 경우는 ‘미투운동’이나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박수현 전 대변인은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의도가 불순한 폭로’라는 취지로 대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쟁점은 박수현 전 대변인과 문제가 되고 있는 당사자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등의 개인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2014년 지방선거 공천이 어떤 기준으로 진행됐느냐이다. 기초의원 공천은 물론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당 조직이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형식적으로 따지면 2014년 3월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바꾼 것이므로 조직적 연속성이 있다. 따라서 당시의 공천 과정을 조직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마치 남 일 보듯이 한다. 12일 박수현 전 대변인의 공직후보 적격심사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진상조사 또는 그에 준하는 어떤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렇듯 최근의 사건들은 ‘미투운동’ 등이 드러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나 틀이 우리 사회에 사실상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선 누구의 득실을 따지거나 정치공작을 계획하고 또 걱정하는 등의 대응만 남는다. 그 과정에서 결국 최종적으로 추가 피해를 당하는 것은 구조적 약자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이 구조적 불평등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도 개인을 넘어 조직적, 사회적 차원에 까지 가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이 어떤 기준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는 법적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니만큼 사회적 문화적인 규범을 형성해야 한다. 공론을 조성할 책임이 있는 언론이 그 역할을 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늘의 언론을 돌아보면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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