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긴 시간 대화를 가진 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은 웨스트윙 마당에 섰다. 보통은 국가 정상들이나 서는 장소인데, 트럼프가 권했다고 했다. 트럼프가 워낙에 튀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런 정도라면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한국의 중재에 흡족해한다는 해석이어도 좋을 것이다.

벅찬 감정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진전을 보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남북사상 최초 북한 정상이 남측 지역에 오는 정상회담 결정 소식이 들려오고, 그 며칠 뒤에 다시 북미정상회담의 성사가 전해졌다.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한 놀라움, 반가움, 고마움 등이 뒤섞여 교차한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대사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휴전 국가인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가치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꾸려질 때만 해도 누가 지금의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절대 만만치 않았다. 늘 있었던 일본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겐세이’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차분히 늘 하는 일처럼 북한과의 평화업무를 진행해갔다.

북미정상회담 발표가 나자 세계 언론은 트럼프나 김정은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력을 칭찬하기 바빴고, 노벨평화상을 거론하기도 했다. 모두가 가능한 이야기고, 타당한 거론이라 할 것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런 찬사도 아니고 상도 아닌, 오직 평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상을 받을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국제적으로 약속된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모처럼 내민 손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잡았다. 비록 논란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구성되고, 개막식에는 남북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동시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린 올림픽만 잘 치러도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었다.

또 평양올림픽이라는 일본과 자유한국당의 비아냥이 끼어들었지만 정작 화자 외에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독백 수준이었다. 한때는 안전을 이유로 초라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대회가 점점 모든 면에서 성공한 올림픽이라는 호평을 쌓게 되었다. 총 한 자루 보이지 않는 안전한 올림픽, 게다가 그 어렵다는 흑자를 낸 올림픽 등의 반가운 소식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당시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자료사진 콤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지만 남북이 나눠야 할 말은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곧바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표로 하는 특사단을 평양으로 보냈고, 평양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그 결과는 예상조차 할 수 없을 만치 파격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한반도 전쟁종식이라든지, 비핵화 등을 전제로 한 북미정상회담까지 합의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정의 마지막 주역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흔쾌히 가담함으로써 갑작스레 찾아온 평화 분위기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와 같은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의 결과가 갑자기 나온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뿌려놓은 평화의 씨앗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을 언급한 것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4월말에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 것인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한 것이다.

북한 특사로 방남했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의 주역이 되시라”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김여정의 덕담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평화가 오고 있다.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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