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크게 질 줄은 몰랐습니다. 전반과 후반에 뛴 팀이 다르게 느껴졌을 만큼 북한 선수들의 부진은 너무나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북한이 21일 밤(이하 한국시각) 남아공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2차전 포르투갈전에서 전반 29분 하울 메이렐르스(포르투)의 선제골을 비롯해 후반에만 6골을 내주는 아픔을 맛보며 0-7로 대패했습니다. 이로써 북한은 2전 전패로 16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또 지난 1966년 월드컵 8강전에서 3-5로 아깝게 역전패한 한을 푸는데도 실패했습니다.

브라질과의 1차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에 이번 포르투갈전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컸습니다. 탄탄한 수비 축구를 구사하면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강한 역습이 포르투갈에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반전에는 점유율 면에서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고, 결정적인 기회를 잇따라 만들어내며 새로운 기적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습니다. 메이렐르스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에도 점유율에서 53-47로 앞서나가는 등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후반전에 꽤 재미있는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신 있게 경기를 펼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됐습니다. 16강 진출을 위해 어떻게든 승점이 필요했던 북한은 후반 들어 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다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약점을 노출시켰고, 이를 엿본 포르투갈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노출된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한 포르투갈은 발이 느린 북한 수비 뒷공간을 활용해 잇따라 기회를 만들어냈고, 북한은 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 실점한 뒤 중앙선으로 공을 가져가고 있는 정대세(앞)와 박남철(뒤)ⓒ연합뉴스
후반 8분부터 7분 사이에 3골을 내준 데 이어 후반 36분 이후 8분 사이에 다시 한 번 3골을 허용하는 등 집중력에서도 크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한 축구 특유의 강한 정신력마저 실종됐고, 선수들의 실책성 플레이도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번 월드컵 최다 스코어 차이로 완패를 당하면서 고개를 떨궈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골을 잇따라 허용하는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 전반전에 좋았던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공격 기회를 엿봤으면 이렇게 크게 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제 경기 경험 부족의 아쉬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축구가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른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브라질과의 경기를 통해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만큼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는 그들 특유의 투지 넘치는 축구를 회복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했고, 북한 역시 1차전에서 강한 면모를 드러내 동아시아 축구가 다시 한 번 재조명을 받던 상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북한 축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나아가 아시아 축구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열을 가다듬고, 최종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는 북한 축구 특유의 경기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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