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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자격 이경규, 최악의 비참한 모습[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문화평론가 | 승인 2010.06.21 09:55

<남자의 자격>에서 지난주에 이어 비참한 ‘꼽사리’ 방송이 이어졌다. 월드컵을 독점한 SBS의 잔치상에 숟가락 올려놓는 전법이다. 지난주에도 그랬지만, 정식 중계자와 해설자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사하는 장면은 역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김국진은 ‘좋은 경기 장면을 못 보여드리는 점 정말 죄송하다’며 유감스러워 했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유감스러웠다. 독점 때문에 방송편의를 제공받지 못해서인지 <남자의 자격> 월드컵 특집은 아무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KBS의 SBS를 향한 ‘맛좀봐라’ 억하심정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 같다. 예능에 억하심정이 들어갔으니 즐거움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가 있나.

그래도 독점창구가 아닌 곳을 통해 월드컵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통쾌한 일이었다. 이런 걸 상상해보자. 어느 독재국가가 있었다. 거기에선 국영방송사가 언론을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독립방송사의 해적방송을 들었다. 그 순간 얼마나 통쾌할까? 이건 그 프로그램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딱 그런 종류의 통쾌함이 느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월드컵을 맞아 말로는 ‘한국, 한국’을 외치면서도 이 축제를 사적으로 독점하려고 하는 몇몇 기업들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의 축제, 국민의 열망보다 특정 기업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부부젤라 소리에 파묻혀 목소리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이경규의 처지도 참으로 비참해보였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라고 생각했던 월드컵에서 독점에 치어 ‘꼽사리’ 신세가 될 줄 어떻게 알았으랴. 독점에 치인 우리 국민들의 신세도 그렇다. 기업이 주인이 되고 국민은 졸지에 객이 되었다. 이경규도 우리 국민들도 최악의 월드컵을 당했다.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특히 안타까웠던 장면은 태극기가 펼쳐지는 대목에서였다. 화면에 두 개의 대형 태극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쪽에 대형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민의 축제가 상업적 경쟁에 의해 얼룩진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서울광장이 기업의 영향력 하에 놓이면서 거리응원의 구심이 두 개로 쪼개졌다. 특정 방송사 관할 하에 있어서 함부로 찍지 못한다는 거리응원과 그렇지 않은 거리응원으로 쪼개졌다는 구설도 있다. 이젠 태극기마저 두 개를 봐야 하나?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외국에 나가 분열로 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었다. 그 먼나라에서까지 따로따로 태극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싫든 좋든 월드컵은 이미 국민의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의 보편적 관심사가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축제에 대한 접근권도 보편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돈 많은 누군가가 돈으로 독점에서 국민의 접근권을 통제해선 안 된다.

지금의 독점사태로 인해 벌써 SBS가 방영되지 않는 지역의 국민들은 월드컵 접근권을 박탈당했다. 지금처럼 독점이 계속되면 상업적 이윤추구에 의해 월드컵 향유에 드는 비용이 점점 올라갈 것이고 소외되는 국민들도 많아질 것이다. 치솟는 독점비용 때문에 국민에게 전가되는 액수도 점점 커질 것이고, 유출되는 외화도 많아질 것이다.

국민들은 경기 막간에 다양한 시각에서의 분석적 해설을 들을 권리도 빼앗겼다. 오직 한 방송사의 광고만 봐야 한다. 과거 월드컵 때는 그래픽을 동원한 상세한 분석을 제공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반전 주요장면 잠깐 보는 것이 다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고, 광고, 광고. 그 광고비용은 방송사와 피파의 수익으로 빨려 들어가고, 결국 광고주 기업이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길 것이다. 서울광장에서 자유롭게 응원할 권리도 기업들에게 침식당한 상태다.

예능에 정식 중계팀을 등장시킨 KBS의 억하심정이 비참해보이면서도 이해가 가는 이유다. <남자의 자격>의 ‘꼽사리’ 방송이 프로그램 자체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통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국민의 축제, 국민의 관심사에 이렇게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기업이 돈을 많이 냈다고 해서 국민에게 ‘니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미 남과 북이 갈린 나라에서 또 한번 갈가리 찢겨선 안 된다. 이 방송사 따로, 저 방송사 따로, 저마다 한국의 이름으로 배타적 이익을 좇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 기업의 관할권 때문에 거리응원이 이리저리 찢겨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진 두 개의 태극기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방송사와 기업들이 2010년 독점 사태에 자극받아 이익 챙기기 경쟁에 박차를 가한다면 앞으로 정말 황당한 꼴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분명한 여론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독점의 영역이 성큼성큼 늘어나다간 결국 국민이 비참한 ‘꼽사리’신세가 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문화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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