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첫 선을 보인 블랙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흑인 히어로였다.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무수한 마블 히어로 틈 속에서 그저 '원 오브 히어로즈' 또는 '와칸타 왕국의 왕' 정도로만 여겨졌던 블랙팬서가 단독 시리즈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큰 기대는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리부트되는 스파이더맨에 대한 기대가 더 컸었다. 당연한 기대값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팬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히어로였고 인지도 면에서 스파이더맨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쳐져 있었으니 큰 기대를 걸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첫 선을 보인 히어로였던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나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는 여전히 단독 영화가 제작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뒤늦게 나온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의 단독 영화가 먼저 제작된다는 부분은 마블이 무언가 보여줄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호기심도 '잠시나마' 들었었다.

영화 <블랙 팬서> 포스터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블랙팬서'에 대한 호감도와 인지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사실 '어벤져스'가 선보인 후 연이어 등장한 마블 히어로물들의 신선도가 아주 다소 떨어지려는 찰나였는데 '블랙팬서'는 다시 한 번 마블의 스토리텔링과 관객 장악 능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곧 개봉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의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블랙팬서' 시리즈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흥미와 볼거리를 2시간 15분의 상영시간 동안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정치적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면서도 쓸데없이 진지한 척을 하지도, 그렇다고 경박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쓸데없이 무게를 잡는다는 느낌을 주면서 보는 이의 안구에 많은 부담을 안겨주는 DC 히어로물들과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이다.

흥겨운 아프리카 토속음악이 곁들여진 OST와 더불어 부산 시내를 누비는 박력 있는 추격씬은 시각적 쾌감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어 마블은 두 번째 한국로케를 진행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나오는 서울은 솔직히 동남아시아 도시인지 헷갈릴 만큼 전혀 특색이 드러나지 않아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블랙팬서'에서는 부산의 자갈치 시장 뒷골목의 풍경과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제대로 선보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을 다이나믹하게 선보인다.

영화 <블랙 팬서> 스틸 이미지

또한 웃음을 전하는 장면에서는 확실하게 웃음을 선사하는데 와칸다 왕국의 전사 음바쿠(윈스턴 듀크)는 극 초반 블랙팬서의 왕위에 도전하면서 긴장감을 전달하지만 극 후반부에서는 예기치 못한 반전 웃음을 계속 선사한다. 또한 극 후반부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지난해 연말 흥행참패를 기록한 DC의 '저스티스 리그'가 억지로 웃음을 전달하려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 대조적으로 떠올랐다.

영화 '블랙팬서'의 매력은 악역에게마저도 공감을 이끌어내게 만드는 스토리 및 캐릭터 구성이다. 출생 및 성장과정에서 소외와 차별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원한을 쌓으면서 증오의 화신이 되어버린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벌이는 악행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악역이 아닌 사연 있는 악역으로 묘사되면서 오히려 클라이맥스 부분에선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개연성 있는 구조 및 인물 캐릭터 등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블록버스터다운 스릴 넘치는 액션을 가미한 '블랙팬서'는 마블이 왜 헐리우드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면서 확실히 느낀 점은 DC는 마블을 따라잡는 것보다는 마블만큼 탄탄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갖추는 것부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블랙 팬서> 스틸 이미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2015년 록키 발보아 시리즈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크리드'로 인상적인 데뷔신고를 마친 바 있다. 흑인 특유의 랩 뮤직과 어우러진 크리드의 리드미컬한 복싱 스텝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블랙팬서' 또한 흑인과 아프리카의 특성이 잘 묻어나는 OST를 잘 버무리면서 극에 흥을 더한다.

킬몽거로 등장한 마이클 B 조던은 바로 '크리드'에서 주인공 크리드 역을 맡아 실베스터 스탤론과 멋진 연기 궁합을 선보였고 다이나믹한 복싱액션을 구사했다. '블랙팬서'를 본 관객들이라면 쿠글러 감독의 전작 '크리드'를 구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쉽게도 '크리드'는 국내에서 극장 개봉은 하지 않았었다.)

마블의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 전개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는 '블랙팬서'를 보고 난 이후 당연히 자연스레 4월에 개봉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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