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해 SNS에서 떠도는 농담이 있다.

(미디어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베트남 여인과 한국 여인이 함께 등산을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늪에 같이 빠지고 말았다. 마침 근처 길을 지나던 나무꾼을 보고는 손짓하며 “사람 살려 달라!”고 외쳤다. 황급히 달려온 그 나무꾼은 먼저 베트남 여인을 덥석 안아서 구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 나무꾼이 한국 여인을 보고만 있을 뿐 구해 주질 않는 게 아닌가! 베트남 여인이 말했다. “왜 저 여인을 구해 주지 않나요?”그랬더니 그 나무꾼 왈~ “한국 여인은 손만 잡아도 성추행 범으로 신고하는 통에 골치 아파요.”

위 이야기가 왜 ‘농담’이 되는지, 미투 운동이 일부 남성들에게 왜 골치 아픈지 살펴보고자 한다.

베트남 여자와 한국 여자가 빠진 늪

이 이야기는 한국 여자를 향한 일종의 교훈이다. 나무꾼은 자신의 골치 아픔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성폭력 문제를 예민하게 굴면 위험에 처할 때 구해주지 않겠다는 ‘협박’이다. 이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살인이라는 목소리에 ‘일부’ 남성들이 ‘여성분들 자꾸 이러시면 성폭력 당할 때 안 구해줄 겁니다’라고 했던 말과 상통한다.

그리고 이 늪에 빠진 사람은 한국 여자와 한국 남자도 아니고, 한국 여자와 베트남 남자도 아니고, 한국 여자와 베트남 여자다. 또 늪에서 구원하는 힘을 가진 나무꾼은 한국 여자도, 베트남 여자도, 베트남 남자도 아닌 한국 남자다. 이 한국 남자는 ‘성폭력에 예민하게 구는 것’을 잣대로 구출 여부를 선택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농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여자와 베트남 여자 모두 어떤 늪에 빠져 있으며, 한국 남자가 거기에서 구원해 줄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적여’는 절반의 거짓

나와 어떤 사람이 늪에 빠졌다고 하자. 근처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때 나 말고 다른 사람 먼저 구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통은 자신 먼저 구해달라고 외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서 있는 사람을 유인할 방법이 ‘사랑’이라면? 사랑에 절박해질 것이다. 같은 원리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사회경제적 권력의 대부분을 남성이 쥐고 있을 때, 여성이 그 자원을 간접적으로나마 얻을 방법은 전통적으로 ‘사랑(결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여적여’는 절반의 거짓이다. ‘남적남’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의 적은 남자’란 말은 따로 없다. 남자끼리의 싸움은 능력을 겨루는 공적인 ‘경쟁’인 반면 여자끼리의 싸움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사적인 ‘질투’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남성은 주체로서 경쟁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선택받는 객체의 위치에서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투 운동으로 한국 여자끼리 뭉쳐 ‘여적여’가 안 되니 베트남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여적여’를 만든 장본인은 가부장문화이며, 베트남 여자와 한국 여자가 빠진 늪은 여성혐오 문화를 상징한다. 또 베트남 여자만 구해’줬다’는 부분은, 베트남 여성들은 ‘성추행이다’조차 말할 수 없는 늪에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무꾼은 여자들이 늪에 빠지길 은근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야 여성들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이 나무꾼에 이입하고 있는 이야기꾼은 교훈을 위해 늪이라는 설정을 ‘만들었다’).

속풀이쇼 동치미(MBN)

‘남녀 편 가르지 말라’의 진짜 속내

결국 남성들이 미투 운동에 대해 ‘남녀 편 가르지 말라’고 하는 것, 나아가 ‘남녀끼리 싸우지 말고 사랑하자’라는 반응은 가부장적 연애 문법을 어기지 말라는 뜻이다. 오빠 말 잘 듣는 ‘사랑 받고, 웃어주는’ 존재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girls do not need a prince’,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할 때 남성들이 분노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꾼의 권력은 나무꾼 자체의 힘이 아니다. 늪, 즉 여성혐오 문화 덕분이다. 그 늪이 아니라면 한국 여자와 베트남 여자, 한국 남자 모두 동등하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늪을 고발하는 것이 미투 운동이며, 없애자는 게 페미니즘이다. 따라서 ‘베트남 여자와 한국 여자’ 이야기가 드러내는 것은 가부장문화가 여성혐오로 권력을 계속 누리고 싶다는 적나라한 속내이자, 여성혐오가 있어야만 권력이 유지된다는 찌질하고 초라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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