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분노는 사회변혁의 원동력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인 스스로 실천했고, 실현했기에 누구보다 잘 아는 내용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은 대통령밖에 바뀐 것이 없다는 말처럼 고쳐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한국에는 여전히 분노라는 동력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집단지성으로 모습을 바꾼 촛불의 분노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 운동이 그 증거이며, 보수 세력들이 끈질기게 휘두르는 색깔론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분노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건강한 분노는 한국사회를 어둡게 지배하던 낡은 이념들을 차례차례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노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1절을 앞두고 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를 했다. 윤미향 대표는 당연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했다. 일본과의 껄끄러운 상황을 맞으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완곡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졸속 합의를 준수할 수 없음을 천명했지만,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정대협 윤미향 대표의 주장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완강한 반대를 마주한 우리 정부의 방침이라 진행이 더디다 이해하는 것은 적어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그쪽 활동가들에게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정대협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정대협의 국민청원이 국민들로부터 전혀 호응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정대협의 주장에는 정부를 압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정대협의 주장에 대해서 전부 동의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고작 1200명 정도밖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충격이라 할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왕따 논란의 주인공에게 이틀 만에 60만 명이 동참했던 사실과 대조되는 현실이다. 심지어 바로 해체되었을 거라 여겼던 화해치유재단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직원들 급료 등 매달 약 2000~3000만 원씩 지출하고 있다고도 한다.

아직 정부의 예산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해치유재단이 사용하는 돈은 일본에서 보낸 10억엔의 일부라는 것이 윤미향 대표의 생각이다. 일본과 많은 다툼을 거쳐야 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뜯어 고치거나, 파기하는 것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화해치유재단 정도는 바로 해체하는 게 우리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는 상징적 태도라 할 수 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어린이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1절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두 가지 분노할 사실이 알려졌다. 일본군이 한국 위안부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영상과 유엔 인권위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를 보았다. 게다가 이 사실을 대부분의 매체들은 중요하게 다루지도 않았다. 지금 당장 잘 팔리는 이슈들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국민 정서상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을 일본에 전한 바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기존 박근혜 정부와의 합의를 고집하는 일본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시민사회의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틀 만에 60만 명도 모이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에는 1200명이 관심을 표하는 현실은 우리 국민정서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올해로 99주년의 3·1절을 맞는다. 내년이면 100주년이라는 의미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대로 둔 채로 100주년을 맞는다는 것은 3·1운동의 선조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좀 더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좀 더 강력하게 ‘국민정서’를 강조할 수 있도록, 일본이 마음껏 생떼를 부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서 우리는 더 분노해야겠다. 우리에게 3·1절의 의미는 다시 분노가 되어야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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