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선전부장 방남에 거세게 반발하며 길거리로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전날부터 김 부위원장의 방남 경로로 예상된 통일대교 남단에서 농성을 벌였고, 김 부위원장은 우회 방남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길거리 투쟁은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5일 오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통일대교 남단에서 열린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저지 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길거리 투쟁은 24일 오후부터 시작됐다. 김성태 원내대표와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무성 의원 등은 통일대교 남단에서 농성을 벌였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성태 원내대표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의 원흉인 김영철만은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바램을 담아 이를 저지하고자 김영철이 내려온다는 길을 막고 선 것"이라면서 "밤새 이곳에서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25일 오전 10시15분 무렵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김영철 부위원장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농성장에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김 부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농성을 피해 우회해 방남했다.

홍준표 대표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우회 방남에 대해 "김영철이 개구멍을 통해 숙소인 워커힐 호텔로 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 당원이나 시민들이 그것에서도 편하게 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홍 대표는 "대한민국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줬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의원은 "풍찬노숙하며 김영철이 통일대교 대로변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면서 "김영철이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동안 반드시 체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길거리 투쟁에 자칫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남북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이미 이번 북한의 고위급 방문과 관련해 통일부는 북한이 고위급대표단 방남 목적을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가로 밝혔고, 김영철이 현재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책임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김영철 방남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고 전했다.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북한 도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중요한 문제"라면서도 "이와 함께 지금 정치권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도발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 평화를 구축해 나가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책임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도 자유한국당의 길거리 투쟁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평화당은 최경환 대변인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정부 당시 군사회담 때는 김영철을 환영했던 자유한국당"이라면서 "통일대교에서 농성을 벌이는 자유한국당의 행위는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훼방놓기 위한 행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경환 대변인은 "제1야당의 드러눕기와 막말에 많은 국민들이 혀를 차고 있다. 성공적인 올림픽에 최악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면서 "자유한국당은 평화로 가는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천안함 유족들이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천안함 폭침주범 김영철 방한 규탄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천안함 유족들에게 최소한의 설명과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있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통일부 정례브리핑에서 백태현 대변인은 "유족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저희가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국민들의 염려, 국민들께서 우려하거나 염려하지 않으시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안함 유족들에게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양해를 구하는 실질적 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유족들은 25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달라 하기 전에 유족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정부 들어 유족들은 소외감과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김영철이 유가족 눈을 피해 한국 땅을 밟은 데 대해 대통령의 답변을 듣고 싶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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