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 구(이동윤 연출)는 한국 드라마가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스포츠 드라마이다. 작년 동방신기 유노윤호가 도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맨땅에 헤딩'이 그렇듯이 스포츠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듯 해도 막상 드라마라는 장르로 등장했을 때에는 한국 대중이 관심주고 싶어 하는 조미료를 가미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런 모든 것들을 모두 갖추면 또 스포츠 드라마라고 하기도 좀 어렵다.

그렇지만 작년 국가대표 그리고 킹콩을 들다 등 스포츠 영화가 호평을 받았다. 그것도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해서 영화팬을 끌어들였다. 최고 인기 종목인 축구, 야구 모두 실패했는데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스키, 역도가 먹힌 것이다. 모르는 만큼 관심거리만 던져줄 수 있다면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비인기 종목인 만큼 아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 속 이야기들이 싱싱한 회 한 점을 입에 막 넣은 듯 쫄깃하게 씹혔다. 그리고 그것들 안에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눈물처럼 흘린 땀이 담겨있다.

런닝 구 역시 마찬가지로 마라톤이라는 비인기종목을 택한 것이 우선은 잘했다. 구기종목과 달리 제작비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런닝 구에 딱 맞는다. 주인공 구대구(백성현)는 어릴 적 친구 둘 때문에 장애를 갖고 있는 형을 잃었다. 한 친구에게는 지기 싫어서, 한 친구에는 이겨서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형을 잃고는 아버지는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자연 대구는 달리기는 그만두게 됐다.

구대구는 물론 주인공이니 당연히 마지막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겠지만 중편 드라마만이 가질 수 있는 파격이라고 할까 아주 슈퍼맨은 아니다. 다소 전형적인 청소년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분노 과잉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잘나기만 한 주인공의 틀에서 벗어난 듯 해서 조금 낯설지만 차라리 더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구대구의 라이벌 허지만(유연석)은 지역 유지인 작은 항구도시의 수산조합장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국가대표를 목전에 둔 엘리트 선수이다.

어릴 때부터 대구는 지만에게 지기 싫어했고 제대로만 달리면 언제든지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의반 타의반 마라톤을 그만두고부터는 대구는 지만에게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더군다나 단짝 세 친구 중 홍일점인 행주와 함께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대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음대에 다닌 행주(박민영)는 서울시향도 아닌 구청 악단에도 번번이 탈락하고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주변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다.

당연히 지만 역시 행주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남자 둘, 여자 하나의 관계가 글루미 선데이처럼 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중세로 가면 결투고, 근대로 와서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빛나는 순정이어야 쟁취할 수 있다. 적어도 하나는 아플 수밖에 없는 세 친구지만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같이 태어나 자라서 연인이 되고 결혼한다면 중년만 되어도 노년만큼의 추억을 쌓여 있을 테니 얼마나 재산이 많은가.

런닝 구를 그냥 보기 시작했다가 두 번째 볼 때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채널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동윤 연출에게는 미안한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런닝 구를 보면서 일본 드라마를 머리에 자주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누가 나오는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하고 깨끗한 이야기들이다. 한국에 그런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통 만날 수 없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런닝 구는 애초에 시청률을 크게 기대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미리 포기한 탓인지 연출은 마치 습작하듯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싶었던 꿈에다 습자지를 대고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같이 조심스러움이 보인다. 그래서 착하게 보고 편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 시쳇말로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보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드라마이다.

4부작은 그래서 조금 아쉽다. 단막극도 있는데 4부면 딱히 적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좋은 사람과 만나서는 헤어지기 싫어지는 그럼 심리일 것이다. 또 그런 것이 중단편의 묘미이기도 하니 아쉬움은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 단편 시리즈 베스트셀러 극장을 더 아쉬워하게 만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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