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숙빈최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악녀 이미지의 장희빈을 재해석하여 품위있고 지적인 이미지로 그리면서, 숙빈최씨와 장희빈과의 관계를 빛과 그림자에 비유하여 대립구도를 만들고 있는데요.

그런 장희빈의 캐릭터적 재해석과 더불어 그 배역에 이소연이 캐스팅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지적이면서 품위 있는 장희빈을 잘 표현할 것 같아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영 초기만 해도 장옥정으로서 지적이고 품위 있으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져서 상당히 만족했었는데요. 점점 갈수록 특히 희빈의 자리에 오른 뒤부터는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식상해지고 진부해지더군요.

그래도 장희빈이 정점에 이르러 변화를 겪는 시기이기 때문에, 동이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보니 상대적으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겠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한다는 PD의 의도나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었죠.

앞서 이병훈 PD는 장희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는데요.

기존의 질투나 하고 푸닥거리나 하는 모습은 진정한 장희빈이 아니다.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똑똑한 여자였겠는가.
장희빈은 왕과 국사를 논할 정도로 지식과 기품을 갖춘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PD의 이런 생각에 참 공감하며 지금은 다소 식상하고 진부한 면이 있지만, 앞으로 그려질 장희빈은 과도기적 변화를 겪고 감독이 생각하는 본격적인 장희빈이 그려지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동이에 대한 이병훈 PD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완전 실망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인터뷰를 보고 나니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식상해지고 진부해지는 이유가 단순히 연출상의 문제가 아닌, PD가 생각하는 장희빈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문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병훈 PD는 동이 25회에서 장희빈이 당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배신감과 충격으로 장희빈이 변한다고 하는데요. 숙종과 자신 사이에서 동이만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동이가 없어져도 끝내 맘 속에서 동이를 품고 있는 숙종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숙종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지요.

심중에 동이 그 아이를 묻어두고 그토록 애타게 그 아이를 찾으면서, 저를 향해 거짓 미소를 보내셨던 것입니까?

전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아프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장희빈의 안타까운 (복수=변화)에 대해서 이병훈 PD는 장희빈이 숙종을 인간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면서 장희빈이 몰락에 이르는 본격적인 시초가 된다고 하는데요. 그런 이병훈 PD의 생각은 26회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중전마마, 이제 그만 마음을 잡으십시오. 제가 뭐라 말씀드렸습니까? 사내의 맘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리 말씀하셨지요. 그 때 제가 뭐라 답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저는 전하의 맘을 믿지 않고 제 자신을 믿는다 했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어머니. 전 그 무엇보다 전하의 맘을 제일 믿고 싶었나 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다 이런 것인가 봅니다. 제가 전하에 지은 죄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전하께서 저를 속이신 것만 이렇게 힘겹게 아프고 원망스럽습니다.

그렇게 이병훈 PD는 결국 장희빈과 숙종, 그리고 동이의 삼각 관계에 따른 순수한 러브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병훈 PD의 입으로 직접 기존 질투나 하고 푸닥거리는 모습은 진정한 장희빈이 아니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순수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 결국 질투가 극에 달해 복수를 하면서 망가지는 것이었죠.

저는 사실 숙종과 국사를 함께 논할 정도로 지적이고 품위 있는 장희빈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세력들에 의해 자신이 책임져야할 상황들에 휘말리면서 그들의 음모에 동조하게 되는, 그리고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자리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독해질 수밖에 없는, 하지만 항상 바르고 곧은 동이를 보면서 뒤로는 이미 검은 물이 들어버린 자신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이미 중전이 되면서 여자로서 왕실의 최고 자리까지 왔지만 그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가질 수 있는 유혹으로 조금씩 더 욕심을 부리게 되고 이를 가로막는 동이와 공존할 수 없는 빛과 그림자처럼 대치하게 되는 그런 장희빈을 기대했었습니다.

사실 장희재가 벌인 일 때문에 깨진 거울에 빗대어 동이와 갈라서는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것들이 잘 보여졌는데요. 사라진 동이가 언제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비수를 꽃을 지 두려워하며 악몽을 꾸는 것도 그런 장희빈의 변화에 따른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동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여지는 분량이 너무 적어 그 변화를 섬세하고 자세하게 그려내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비교적 포인트는 잃지 않고 그려왔다고 생각했는데요.

당혜를 보고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숙종에 대해 복수를 결심하게 되면서, 악독하게 변해가고 그것이 몰락의 시발점이 된다는 이병훈 PD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더군요. 물론 순수한 사랑, 장희빈 역시 숙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품위 있고 지적인 장희빈이 자의든 타의든 변하게 되었을 때는, 보다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죠. 이왕 검게 물들었다면 그 무엇보다도 검고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섬뜩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지금 장희빈을 보면 질투에 눈이 멀어 숙종의 바람끼에 마음 아파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장희빈을 보다 인간적으로 그리는 것은 좋지만, 순수한 사랑에 목매는 역대 최악의 장희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당시 임금의 여자들에게 임금의 사랑이란 곧 자신의 권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총애를 받기 위한 여인들의 머리싸움 역시 치열했죠. 상대방을 견제하고 질투하는 것도 그런 권력을 가지기 위해 경쟁자들 사이에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사랑이 없었다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순수한 사랑에 자신만을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질투하고 나아가 복수까지 다짐하는 것은 당시 임금의 여자들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차라리 권력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부르고 한발 한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리는 장희빈을 그리는 것이 휠씬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요. 숙종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장희빈을 보면, 당시 치열했던 당쟁이 무색해지는 장희빈의 놀라운(?) 재해석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skagns.tistory.com 을 운영하고 있다. 3차원적인 시선으로 문화연예 전반에 담긴 그 의미를 분석하고 숨겨진 진의를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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