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덕분에 기억에서 소환된 노래가 하나 있다. 한때는 시도 때도 없이 불렀던 노래, 통일의 노래. 노래가 사라지며 통일은 ‘우리의 소원’은 아닌 것이 되었다. 삼지연 관현악단 덕분에 다시 듣게 되어 감회나 반성을 일깨운 것은 좋았으나 어쩐지 하도 낯설어 애초에 이 노래가 북녘의 것이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의 두 번째 공연을 보고서야 ‘통일의 노래’가 본래 우리 것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통일의 노래’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것이다. 뭔가 온몸을 꽁꽁 묶었던 줄에서 풀려나는 기분이기도 하고, 갈 곳을 잃은 듯한 허탈함도 없지 않다.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함께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강릉과 서울에서의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은 그렇게 잊었던 혹은 잊어야만 했던 통일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어찌 단지 노래 때문이었겠는가. 북한은 이번에 선수단 규모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력을 파견했다. 그중에서도 사실상 핵심은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었다. 평양 초청이 담긴 김정은의 친서를 가져온 김여정이었다.

그저 평창동계올림픽만이라도 평화롭게 잘 치러도 본전은 뽑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북측이 준비한 것은 그 이상이었다. 북한 특사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의 주역’이 되라 덕담을 건넸고, 문 대통령도 ‘만남의 불씨를 횃불로’ 키우자고 호응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급진전이었고, 다시 우리는 통일이라는 낯선 듯 익숙한 염원을 떠올리게 됐다.

온갖 행복한 상상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릴 수 없다.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단절되었던 남북 간의 소통이 너무 급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을 왜 10년간이나 닫고 지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평탄할 리 없다. 당장 남북이 평화와 통일을 다루고자 한다면 곤란해지는 정치적 알력이 견제하고, 현재 국제적 제재 국면의 북한과 아무렇지 않게 교류를 가질 수도 없는 현실의 벽도 존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남북이 하겠다면 국제 사회도 이를 만류할 이유는 없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그것을 간단히 증명한다. 개회식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의 악수는 해외언론이 ‘세기의 악수’로 평가할 만큼,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화해를 세계는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대화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전처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기대 이상 혹은 필요 이상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그만큼 현재의 국제적 봉쇄 구도의 탈피가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처럼 잡은 국면전환의 기회를 날려버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조심스럽지만 다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벌써 분단 80년을 지나 한 세기를 향하고 있다. 통일을 못 할 이유도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통일은 포기해서는 안 될 모두의 꿈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비용을 이제는 통일로, 번영으로 써야 할 때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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