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한국에도 미투(#MeToo) 열풍이 불고 있다. 검찰에서 시작된 바람이 전 분야로 확산되는 현상 속에 중견시인 최영미의 시 한 편이 화제가 됐다. 최영미 시인의 시 제목은 하필 ‘괴물’. 시의 마지막 두 줄이 특히 인상적이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비단 성폭력만의 문제일 수 없다. 2월 5일. 오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하나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혹한의 광장을 이겨냈던 우리는 괴물의 용트림을 보고야 말았다. 법과 민심 위에 존재하는 돈의 권력과 그 권력에 아낌없이 양심을 내어준 법원. 누가 괴물인지 구별할 필요 없다. 괴물은 복수형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법원 건물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질곡의 현대사에 우리는 자주 망언에 치를 떨어야 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 정치개입은 했으나 선거개입은 아니다. 그리고 점점 과감해진 망언의 줄기는 마침내 ‘재산 도피 의사는 없다. 단지 장소가 외국’이라는 괴물의 언어를 또 만들고야 말았다.

심지어 정경유착을 숨기기 위해 소극적 뇌물이라는, 법조인들마저도 생소한 논리로 무죄를 빚어냈다. 형용모순 아닌가. 억지로 바치는 것이라면 뇌물일 수가 없다. 마치 과거 삼정의 문란 때 탐관오리들에게 고혈을 빼앗긴 기근에 허덕이던 백성들도 그렇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겠다? 억지춘향이 낫지 소극적 뇌물이라니. 제발 코미디까지 하지는 말아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된 것은 아니다. 항상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기립 영접의 영예를 누리는 오만한 그들은 이전부터 괴물이었다. 6일 MBC <뉴스데스크>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을 취재해 보도했다. 놀라울 것도 없는 놀라움이 그 안에 있었다.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만 좁혀서 살펴보았다.

[새로고침] 300억 이상 고위직은 집행유예? (MBC 뉴스데스크 보도영상 갈무리)

법원은 횡령 액수가 클수록 빨리 집에 보내주었다. 300억 이상의 횡령에는 100% 집행유예 선고결과를 보였다. 오히려 5억에서 50억원 사이의 비교적 적은(?) 금액이 그보다 훨씬 까다로운 편이었다. 법원의 눈은 큰 것을 작게,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뒤집힌 시력을 가진 것일까? 다른 범죄에 비해 유달리 횡령·배임에만 더 관대한 법원인 것이다. 당연히 하위직보다 고위직을 눈에 띄게 배려한 법원이다. 법이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 먼 기대감에 불과했다.

법원은 기꺼이 괴물이 되었다. 그 괴물이 앞장서 다시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다시 시작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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