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일이었을 것이고, 문제를 제기한 몇몇 이들에게는 사회정의와 신뢰 회복을 위한 중대한 문제였을지도 모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전개 과정을 지켜보는 관람객이었던 전 그저 이 모든 소동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과정이 우습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더군요. 한 개인의 신변잡기라기에는 너무나 판이 커져버렸고, 심각하게 정색하며 꼬치꼬치 캐묻기에는 그 방향이 너무나 엉뚱한. 타블로의 학력 논란이란 여론 놀이는 한국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 한심해서 웃긴 소동극이었어요.

그는 가수잖아요? 사실 이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가수,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랩퍼에요. 애초에 미국 유명 대학 출신이라는 학력에 의해 그 값어치가 평가받는 직업군에 속해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타블로의 교육 수준과 그가 전공한 영문학도로서의 경험과 능력이 영어 가사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어느 대학의 어떤 전공을 했는지의 여부가 에픽하이의 음악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력도 주지 않아요. 그는 가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잘라 말하기에는 묘한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그는 렙퍼이지만 지금의 인기와 성공의 요인에는 에픽하이의 음악 이상으로 명문대 출신이라는 학력이 디딤돌이 된 것이 사실이니까요. 가수가 학력으로 주목받고 그것을 토대로 인지도 확산과 인기몰이에 나서는 이 괴이함. 타블로를 향한 의혹과 입증에 대한 요구는 결국 너가 성공한 이유가 정말 사실이었는지를 증명해내라는 타블로라는 스타의 태생 자체에 대한 의심입니다. 그러니 이런 식의 학력 밝히기 소동이 더 웃길 수밖에요.

그간의 행보가 진실이었는지, 거짓말쟁이에 학력 사기꾼이었는지의 여부를 두고 마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 인양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 모든 소동의 본질은 결국 그가 연예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학력이라는 엉뚱한 허상 때문이었음을 밝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살아오면서 너 어디 출신이지?라는 말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그런 껍데기를 미쳐 버리지 못하는 얄팍한 명예욕, 혹은 학력에 대한 동경이 만든 환상이자 상징을 둘러싼 논란. 우습게도 그 와중에 타블로라는 렙퍼가 만든 음악적 완성도, 에픽하이가 그동안의 활동으로 쌓아올린 성과 따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긴 타블로 그 자신이 이런 환상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성장해왔으니 누구 탓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기는 합니다. 무척이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겠지만 자신도 그 환상을 쌓아올리는데 적극적으로 일조한 셈이니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일이기도 하구요. 힙합 그룹으로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승부해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그러기에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가수로서는 의미 없는 장식이 너무나 긴 시간동안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지금의 혼란과 소란은 어쩔 수 없이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결론입니다.

이 모든 잡음의 마무리가 무슨 회사 입사를 위한 면접 준비처럼 소속사 쪽에서 연예인의 학력 입증을 위한 증빙 서류들을 제출하는 것이라니 이처럼 허망하고 웃긴 일이 또 있을까요? 가수가 가수로서 그 능력을 인증 받지 못하고, 학력이 인기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타블로 학력논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다른 이를 평가하는 기준과 편견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생김새가 너무 삐뚤삐뚤하고 흉해서 우습고도 슬픈 풍경이에요. 이런 시시한 결말마저도 비와 전지현의 열애설에 묻혀 보이지도 않게 되어 버렸으니 더더욱 웃기고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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