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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 이주노동자 수난기[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문제는 비닐하우스만이 아니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8.02.05 08:06

얼마 전 태국 이주노동자 상담 및 통역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가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에 농장주로부터 태국인 이주노동자에게 통역을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기가 막힌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한 달에 휴일이 4일인데 그 휴일마저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나와서 간단한 작업을 도와달라는 이야기와,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숙식비를 더 인상하겠다는 계약서에 합의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한 달에 휴일이 4일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언제든지 잔업을 도와달라고 하는 건 사실상 한 달 내내 일해 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숙식비를 더 올리겠다는 것 역시 철저하게 사업주의 꼼수였다. 

그 활동가는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불법적인 내용을 이주노동자에게 통역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사업주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장에서 이런 불법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노동부나 고용센터에서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불법관행에 대해서 얼마만큼 법적책임을 사업주에게 묻고 있는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비단 이 사례는 태국 이주노동자만의 일은 결코 아니었다.

올 겨울 들어, 각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쉼터마다 밀려드는 이주노동자들로 인해서 쌀이 부족하다거나 가스비가 폭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들었다. 안산에 있는 크메르노동권협회에서 운영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여성 쉼터는 정원에 비해 너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중이라 이주노동자를 더 이상 받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크메르노동권협회와 함께 지구인의 정류장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이찬 동지는 SNS를 통해서 “고용주들은 포천에서, 양평에서, 논산에서... 난방장치가 없거나 고장 난 컨테이너 방, 샌드위치패널 숙소에서 추위에 시달리다 못해 '제발 난방장치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하는 노동자를... 임금도 안 주고 쫒아낸다. 연일 영하 15도이다.”라며 한겨울에 숙소에서 쫓겨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2017년 12월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숨진 컨테이너 숙소 [부산소방안전본부 제공=연합뉴스]

쫓겨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의 상황도 열악하긴 매한가지이다. 지난 2017년 12월 15일 새벽, 부산 사상구의 한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컨테이너 자체가 워낙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영하로 내려가는 한겨울을 버티기 위해서 전기장판 등 전열기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었다고 했다. 심지어 이 기숙사에는 보일러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부산 강서구의 컨테이너 건물에서 화재가 일어나서 자고 있던 러시아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세브란스 병원 화재사건,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 유난히 올 겨울 화재사건이 계속 발생했다. 사실 제대로 된 소방장비도 갖춰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임시 가건물은 화재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화재가 일어나서 급하게 몸을 피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불타버린 기숙사에 남겨져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개인 물건들에 대한 보상 역시 화재보험 등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 사업장이 태반인 상황에서 막막하긴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부터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정부의 대대적인 실태조사와 전면적인 개선방안을 요구했었다. 그나마 지난 12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영 계획’에 ‘농업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이 포함되었다. 이 방안에는 “비닐하우스(비닐하우스 내 스티로폼·합판 등으로 주거공간을 임시 조성한 시설 포함)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 중단”하고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는 경우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허용”하는 등 부분적인 개선안이 담겼다. 

하지만 이주노동단체들이 “비닐하우스가 집이 아니다”라고 해서 오로지 비닐하우스 형 임시거주시설만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위에 언급된 것처럼 컨테이너형 기숙사에서도 얼마든지 화재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기숙사의 형태뿐만 아니라 기숙사의 안전장치는 어떻게 구비되어야 하는지, 이주노동자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일러 등을 포함한 냉난방시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최소한의 남녀 분리도 안 되고 있는 밀집형 기숙사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에 대한 대책은 전혀 포함이 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정도만 기숙사의 형태로 배제하고 최저임금 인상분만큼의 숙식비 인상지침을 그대로 밀고 있는 게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현주소이다.

여수화재참사 10주기 추모 공동 기자회견

기숙사와 같은 숙식시설은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사내 복지형태로 무료이거나 최소한의 비용만을 받았던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어느새 이주노동자에게 기숙사라는 것이 최소한의 집 형태도 갖추지 못한 임시 거주시설로 변형이 되었고ㅡ 한편으로는 임금 인상 효과를 무효화하는 꼼수로 변질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3항에는 쾌적한 주거생활이 국가의 의무임을 선언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에 적합한 주거조건과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주거권과 동시에 국가와 사회는 주거약자의 최저주거지군을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법률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거기본법을 비롯한 한국의 주거정책은 그 대상을 국민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들은 배제되어 있다. 

2007년 2월 11일 이주노동자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던 전남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여수화재참사와 같은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난 후에 부랴부랴 개선대책을 마련할 것인가? 최소한 이주노동자가 체류하고 있는 동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와 노동조건을 마련할 수 있어야 더 이상 이주노동자 수난기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pjww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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