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더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한 일들이 일어남에 따라 이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이 이런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은 대책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 국면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가 주한미국대사로 내정됐다가 탈락한 사건이다. 이런 사실은 애초 밝혀지지 않고 있다가 빅터 차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내정 사실을 ‘과거형’으로 표현하면서 보도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빅터 차 내정에 대해 우리 정부의 아그레망까지 받아놨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건의 이례성이 크게 부각됐다.

빅터 차가 낙마한 것에는 한미FTA 폐지 반대와 함께 ‘코피 작전’에 대한 이견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실제 빅터 차는 내정 철회를 기정사실로 표현한 글에서 코피 작전의 무모함을 신랄하게 비판한 걸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실제 다수의 전문가들이 빅터 차와 같은 이유로 코피 작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해 1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트럼프시대, 한국경제의 진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 (연합뉴스)

코피 작전이란 세부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있지만 제한적 규모의 선제타격론을 가리킨다는 게 중론이다. 사람 사이에 싸움이 붙었을 때 일단 코피가 나면 국면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비유한 작명이다. 북한 내의 어떤 상징적 목표물을 군사적으로 타격하면 김정은 정권이 감히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대화 테이블로 나올 거라는 게 이 작전의 전제이다. 김정은이 보복을 선택하면 남한이나 미국에 일정한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이의 반대급부로 감당해야 할 것은 미군에 의한 궤멸적 타격이기에 사실상 보복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허버트 맥매스터 NSC보좌관 등 백악관 내 강경파들이 주장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현재 상황에서 북미 간의 대화 테이블이 미국에 유리한 형태로 열리기 위해선 미국으로부터의 타격은 없다고 여기는 북한의 신념부터 깨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과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이 쉽지 않다고 평가한 이유는 남한 내 미국인의 소개 조치 등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 자체가 북한에게는 선제타격 임박 신호로 작용하고, 그러면 북한의 선제적 반격을 초래하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러나 코피 작전의 개념 하에서는 애초에 북한의 보복 가능성이 없기에 남한 내 미국인의 소개 조치는 최소화할 수 있다.

코피 작전은 제한된 규모의 군사행동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의회의 허가를 득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백악관 강경파들이 이 개념을 만들어 내고 지지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워싱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는 점에서 군사적 결정 능력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빅터 차 등의 전문가들은 코피 작전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코피 작전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정책 결정이 이성적 판단의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이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보복을 할 경우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협상에 나서자’는 합리적(?) 판단을 김정은이라는 독재 권력이 내릴 수 있느냐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인명을 건 도박과 같은 대응책을 강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언론 보도들을 보면 빅터 차 낙마의 배경에 반드시 코피 작전에 대한 이견만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도 함께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빅터 차 낙마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 양식이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에 여전히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최근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와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탈북자 지성호 씨를 등장시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잔혹성을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성호 씨를 비롯한 몇 명의 탈북자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 체제의 현실을 계속 문제 삼겠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3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독재 권력의 악행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외교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북한 독재 권력의 인권 탄압은 그 자체로 사실인데, 이는 결국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므로 대화나 협상을 통한 해결은 불가능하게 된다. 내부에서의 반발이나 외부에서의 충격에 의한 정권 붕괴만이 인권 탄압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당시의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실제로 이러한 정치적 규정을 반복하며 명분을 쌓은 이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물론 단지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와 빅터 차의 사례만으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예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국의 전략자산 이동과 일본과의 훈련 강행, 북한의 8일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양에서의 열병식 등이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국과 일정 수준에서 합의에 이를 경우 코피 작전이든 뭐든 미국의 군사행동이 언제든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다는 것도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지금와서는 마치 미국 내 대화파의 상징처럼 언급되고 있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제기한 내용과 맞닿는 중국과의 ‘빅딜’ 가능성을 이미 시사한 바 있다.

보수언론은 이런 정세를 근거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 압력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평창동계올림픽 일정을 통해 북미대화의 어떤 계기가 만들어야 전쟁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 너머에서 도박처럼 코피 작전을 말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한국민들이 보아야 한다. 이 사실이 바뀌지 않는 한 평창동계올림픽을 고리로 한 관계 개선의 모색이라는 틀 자체를 바꿀 수가 없다. 적어도 보수세력은 이를 일부러 외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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