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프로그램 <까칠남녀> 측은 지난 13일 고정 출연자 은하선 작가에게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했다. 사유는 가짜 PD 전화번호 알림, 그리고 프로그램 출연 전 SNS에 게시한 ‘십자가 딜도(자위기구) 사진’이었다. 이에 대해 기독교와 가톨릭 단체들은 신성모독이라며 비난했고, 해당 프로그램의 류재호 CP도 “개인 행위로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존중받아야 하지만, 공영방송 EBS의 출연자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연 십자가 딜도는 신성모독이며, 방송 출연 부적격 사유일까?

자위는 신성을 모독하는가

십자가 딜도가 신성모독인 이유는 ‘십자가’라는 신성의 상징과 ‘딜도’라는 성적인 용도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라고 성을 무조건 죄악시하지 않는다. 다만 ‘음란한 성’을 구별한다. 동성애처럼 주로 결혼 관계 내 임신 목적이 아닌 성행위들이 그렇다. 그래서 자위용인 딜도도 음란이 된다. 십자가 딜도는 이러한 신성과 음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신성모독이 된다. 그런데, 자위는 음란한가?

교회에서 자위가 음란이 된 것은 창세기에서, 오난(Onan)이란 자가 질외사정을 해 신의 노여움을 산 일화 때문이다. 단어 ‘자위(onanism)’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야기의 맥락을 더 살펴보자. 오난은 형이 죽자 당시 관습인 형사취수제를 명령받았는데, 형수와 가질 아이가 형의 유산을 받는 게 싫어서 질외사정을 했다. 신이 분노한 것은 쾌락만 취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이지, 쾌락 자체나 질외사정 때문이 아니었다.

EBS '까칠남녀' 출연 당시 은하선 작가

신성과 자위는 양립 가능하다

예수는 율법에만 갇혀 구체적 현실을 보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자위의 구체적 현실은 어떠한가? 자위는 욕망을 해소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성행위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가장 낮다. 또 어린이와 동물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쁨을 주는 행위를, 역시 기쁨이 되는 십자가와 함께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신도들이 십자가 디자인을 활용한 식기, 가구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은 작가는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으므로, 십자가 딜도 사진은 기쁨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주님과 섹스토이가 같이 있는 형태니 말이다.

누군가는 그 사진은 비꼬려는 의도이며, 은 작가는 가짜 신자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십자가 딜도는 부적절한가? 십자가는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십자가는 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으며, 종교적 의미 없이 널리 쓰이는 도상이기도 하다. ‘사랑의 주님’이라고 해서, 사랑을 존경의 뜻으로만 쓰지 않듯이. 그래서 일반적인 십자가더라도, 누군가 자위용으로 쓰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교회 역시 십자가를 본래와 다른 용도로 썼듯, 십자가에 대한 다양한 변형과 활용은 자연스럽다. 교회는 십자가의 다양한 활용과 의미를 막을 수도, 그럴 권리도 없다.

신성은 비판의 성역이 아니다

헌법이 명시하듯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제정분리 사회다. 당연하게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어떤 종교, 문화, 권력도 침해할 수 없다. 신성 모독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도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인들도 타 종교를 ‘욕’할 수 있다. 십자가 딜도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로 보장돼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제재 대상이며, 그런 것이 신성이라면 마땅히 모독되어야 한다. 십자가 딜도는 과도한 금기와 교조주의에 대한 풍자가 될 수 있으며, 교회는 이를 성찰할 계기로 삼을 수 있다.

EBS '까칠남녀' 출연 당시 은하선 작가

공영방송 출연자 자격, 그 기준이 음란하다

류 CP는 십자가 딜도를 하차 이유로 꼽으며 “기독교나 가톨릭 모독이라고 판단해서 하차를 결정한 게 아니다. 하지만 어떤 종교든, 문화든 혐오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에서 논증했듯 은 작가가 십자가를 조롱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또 딜도 자체도 조롱의 의미가 아니다. 남근을 본뜬 돌하르방이 문화재이고, 옛 성물(性物)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처럼. 물론 십자가 딜도가 과도한 금기 등을 풍자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을 종교 전체에 대한 조롱, 나아가 혐오라 일컫는 것은 비약이다.

또 그는 모독과 혐오, 조롱을 구별한다. 모독에는 신을 부정한다는 뜻도 있으니 종교와 선 긋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다음에서 보듯, 실패했다.

류 CP는 또 “방송법에서는 소수자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그럴 의무가 있다. 그런데 같은 방송법 제6조 3항에는 방송은 국민의 윤리적, 정서적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십자가 딜도를 제보한 주체는 종교 단체였고, 그들은 자위와 양성애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즉 류 CP는 ‘일부 단체의 섹슈얼리티 및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국민의 윤리적, 정서적 감정’으로 기만하고 있다. 또 그는 소수자 반영이 ‘의무’라 했음에도 일부 감정의 ‘존중’을 우선시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번 결정이 성 소수자 차별이 아니라고 했다. 대체 국민을 조롱하는 것은 누구인가?

은 작가의 하차는 민주주의의 퇴화이니 퇴폐요, 공영방송의 가치가 혐오세력과 결합했으니 음란이다. 따라서 류 CP의 변명은 ‘개인 행위로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존중받아야 하지만, 공영방송 EBS의 CP로서는 적절하지 않다’

누구든 죄 없는 자, 은하선에게 딜도를 던져라

그동안 십자가를 모독한 쪽은 오히려 교회였다. 갖은 탐욕과 폭력 사건들, 성범죄 1위 직업군이 목사 등 종교인이라는 조사 등으로 십자가의 명예를 떨어뜨렸다. 교회는 많은 이들이 신을 등지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 죄 없는 자, 은하선에게 딜도를 던져라. 그러려면 이참에 하나 장만하셔야겠다. 딜도 구입은 '은하선 토이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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