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충격이 매우 컸다. 사법농단, 삼권분립 붕괴 등의 표현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과장은 아니다. 그리고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가 있었다. 형식을 갖춘 것은 아니고 퇴근길에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는 정도였지만 담긴 의미는 무겁다. 그리고 법원행정처 문제를 해결한 방법도 제시했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4일 국민을 향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법관 13명의 집단 성명을 의식한 내용도 있었다. 핵심의 한 마디는 “오해받을 만한 일은 안 된다”고 잘라 말한 부분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상고심 재판에 대해서 청와대와 의견을 주고받은 정황이 문건으로 나왔음에도 사실이 아니라고 사과 대신 발뺌을 한 대법원 13명과는 다른 태도였다.

24일 '판사사찰' 문건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만큼 증거를 중요시하는 곳이 법원이다. 그런 정도의 상식을 모를 리 없는 대법관들이 원세훈 전 원장의 재판에 관한 문건이 나왔음에도 그 팩트를 반박할 어떤 근거 제시나 논리 없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만 내놓은 것에 대한 후속 비판이 줄을 이었다. 또한 법원 내부와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대법관들의 집단 성명에 대한 반응을 본 후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와 후속 대책에 대한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김명수 대법원장이 밝힌 후속 조사기구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일선 판사들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법원 개혁이나 판사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네이버에는 자동완성이 안 되고 다음에서만 되는 그런 이름이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차성안 판사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내는 장문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었다. '바램'이라고 했지만 이내 '요구'라고 고쳐 쓰며 절실함을 담아냈다.

차성안 판사 SNS 갈무리

차 판사가 요구한 내용은 법원행정처 전 차장의 컴퓨터에 대한 접근을 위해 “조사 명령”을 하고, 비밀번호를 건 심의관들에게는 비밀번호를 제공할 것을 “명령”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당사자들이 거부했을 시에는 명령불복종에 따른 별도의 징계절차와 함께 직무유기에 의한 공무원 고발이라는 형사소송을 진행하도록 하자는 것이 ‘명령’을 강조한 이유였다.

차 판사는 특히 “대법원장님께서 이런 기본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 대법원장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저는 그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결연한 자세를 밝혔다. 이어서 “비밀번호 제공 거부는 결국 외부에서 법원의 자정능력이 없다고 보고, 그 비밀번호 암호 체계를 깨는 능력이 있는 검찰 수사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라며 은연중 검찰 수사의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요구사항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단지, 법원 내부에서의 목소리라는 것이 더욱 무겁게 전해진다. 차 판사의 요구에 대법원장이 귀를 기울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차 판사에 대한 시민들 응원의 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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