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가까스로 제쳤습니다. 엎치락뒤치락 정말 팽팽하였는데, 서초, 강남, 송파에서 오세훈을 향한 무더기표가 나오는 바람에 한명숙이 뒤처졌죠. 오세훈은 다른 지역구에선 한명숙에게 밀렸지만 강남 3구에서 견줄 수 없을 만큼 표를 거머쥐면서 서울시장으로 뽑혔습니다.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주경복 후보를 누를 때와 비슷합니다.

오세훈 후보가 재선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척 속상해하고 있습니다. 이 속상함이 불똥을 일으키더니 이리저리 튀고 있네요. 정치에 대한 참여와 뜨거운 감정이 민주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밑절미지만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참여가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선 안 되는데, 그럼 낌새가 불거지네요.

바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향한 돌팔매질입니다. 단일화가 이뤄져 노회찬을 찍은 14만여표가 한명숙에게 넘어갔으면 너끈히 오세훈의 재선을 막을 수 있었는데, 노회찬이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선거를 망가뜨렸다는 논리죠. 한명숙이 아닌 노회찬을 찍은 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의 재선이 되지 않았냐며 진보신당 지지자들을 비판합니다. 그만큼 반MB, 반 한나라당 정서가 짙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네요. 어떻게든 한나라당 서울시장을 막아야 한다는 절절함이 배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엔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들만의 협상이 아니라 그 사회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거죠. 노회찬을 찍은 14만 여명은 한나라당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그 대안이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만에 하나 노회찬이 한명숙을 밀어주기로 했다고 해도, 민주당을 찍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한명숙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건 괜한 싸움만 일으킬 따름이죠.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TV토론을 피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눈길을 바꿔야 합니다. 비록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이겼지만 민심은 반 한나라당 사람들을 기초장으로 뽑아 정권 심판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점을 빼먹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 결과, MB의 정책 방향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이란 자리가 상징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이 선거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장 자리에 누가 뽑혔는지를 따지다가 다른 결과들을 놓쳐선 안 되죠.

이와 아울러 고민해야 하는 것이 강남3구입니다. 저번 서울교육감 선거와 마찬가지로 강남3구의 한나라당 몰표가 승패를 가르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또는 넘어서야 할지 짚어야 합니다. 강남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말아먹는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욕지기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차갑게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합리성’에 따라 투표할 뿐이죠. 강남에 사는 사람들도 이것저것을 헤아렸을 때, 서울시장감으로 오세훈이 낫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투표를 한 거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부르주아들의 욕망에서 근대 민주주의가 비롯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막무가내로 강남3권을 깔봐선 안 됩니다. 바깥의 떠세로부터 자신들의 욕망이나 이념을 지켜내겠다는 바람이 민주주의의 밑천이고, 강남3구가 ‘무조건’ 한나라당을 찍는 대구경북보단 합리성을 갖춰서 투표를 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누구를 찍어라, 찍지 말아라, 으르렁댈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공화주의’ 의식이 강남 부자들에게 옅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불룩한 호주머니만 지키려 하고, 서울, 더 나아가선 한국의 앞날을 고민하지 않으니까요. 뒤틀린 한국교육과 부조리가 들끓었던 한국현대사가 엉키면서 시민의식 없는 놀부들이 엄청나게 생겼는데,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네요.

▲ 6·2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서울시장 득표 분포 @오마이뉴스 고정미

이런 강남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건 한나라당을 향한 대중들의 지지가 몹시 검질기다는 점이죠. 반MB흐름이 매우 거셌음에도 많은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찍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를 하는데, 넉넉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은 왜 엉뚱한 데다 투표를 할까? 부자들은 자기 기득권을 지켜주는 정치집단을 지지하는데, 왜 서민들은 자기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정치인에 힘을 실어주는가? 이 물음을 던져야 하죠.

세계사를 뒤적거리면, 사회약자들이 자신들의 이득과 전혀 딴판인 정치세력을 밀어주는 일이 쌔고 쌨습니다. 많은 사회철학자들이 머리를 싸매면서 이데올로기나 오류의식(허위의식), 헤게모니, 강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 상징조작, 미디어 독점 등등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한국 서민들이 다른 사회 서민들보다 더욱 기득권층을 응원하는 것은 한국전쟁과 군사독재가 지펴놓은 반공주의와 지역주의, 거기에 반지성주의가 더해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러한 풀이들은 굳건한 한나라당 지지율을 풀어내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시민이라면, 더 고민해야 합니다. 훌륭한 일꾼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사회가 달라집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고 울화가 치밀겠지만, 그 분노를 노회찬이나 강남3구 사람들에게 풀어버리는 건 슬기로운 몸짓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끔찍이 여기던 정치세력과 자신들의 화풀이가 얼마나 다른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노회찬에게 주먹감자를 날릴 게 아니라 그 기운을 한나라당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쓰고,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써야 하겠죠. 한나라당이 고정표를 가졌다고 여기고 그 바깥에서 힘을 합치고자 애를 써왔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한나라당 고정표는 왜 그리 꿈적도 안 하는지 두드려보고,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왜 안 하는지 자기 둘레부터 바꿔가면서 ‘제2의 민주화’를 이뤄내었으면 합니다.

- 블로거 '꺄르르♥인'님(http://blog.ohmynews.com/specialin)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스에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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