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대법원 추가진상조사위원회(이하 추가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판결 전후 적극적으로 사법부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원 전 원장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큰 불만’을 전했고, 상고법원을 전원합의체로 하도록 제안했고 이는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뿐 아니라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의 충격적인 발표에 언론들은 일제히 ‘사법 농단’이라는 아껴뒀던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저녁 8시에 메인뉴스를 배치한 JTBC, MBC, SBS는 모두 톱뉴스로 이 사실을 다뤘다. “박근혜 청와대·사법부, 3권분립 흔든 정황(JTBC)” “원세훈 재판에 청와대 개입(MBC)” “원세훈 재판에 청 민정수석실 개입 정황(SBS)” 등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103조의 내용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우 수석이 상고심이 조속히 진행되길 희망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법원을 지휘했다고 봐도 좋은 근거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번 조사결과를 발표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조차도 “사법행정권이 재판에 직관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 추가조사위의 조사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추가조사위가 강제성을 띤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법원행정처의 PC를 전부 들여다본 것도 아니었다. 추가조사위가 조사하고자 했던 핵심 대상인 법원행정처 간부는 제외됐고, 나머지 3명의 자료도 특정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만 조사할 수 있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중에서 암호가 걸려 있어 보지 못한 파일이 760개이고, 삭제된 것도 300개에 이르렀다. 매우 제한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조사 환경에서 밝혀진 것이 수준이라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만일 제한된 자료들 모두에 접근한다면 어떤 충격적인 사실들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법원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워낙 파장이 큰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더욱 강력한 수사를 통해서 이번에 정황이 드러난 법관 사찰 문제를 포함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에 대해서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2일 성명을 통해 “이런 상태로 조사를 마무리 짓는 것은 사법 불신의 토대를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면서 직접 강제수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강경하게 더 심화된 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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