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에 대한 이사회의 해임제청이 가결되었다. 고대영은 어울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자리에서 즉각 내려와야 했다. 파업 중인 방송노동자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하고, 공영방송이 주민의 기대에 부합하길 요구해온 시청자·시민들도 크게 기뻐한다. 촛불혁명의 심판은 이렇듯 해를 넘어서도 준엄하게 미디어운동장에서 계속된다.

사실, 1987년으로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이, 가까운 촛불혁명의 체험은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다. 첫째, 부정한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않을 것. 둘째, 적폐 세력과는 타협하지 말 것. 셋째, 직접 행동으로 함께 싸워 이겨내는 것 외에 현실 변화의 대안은 없다는 것. KBS는 이제 리셋만 남았고, 우리는 이 역사적 교훈을 남은 YTN 사태를 두고 되새기게 된다.

2008년에 이어 10년 만에 재개된 YTN 싸움이다. 아직 갈 길 먼, 힘든 상황. 그렇지만, 핵심 문제가 정확히 재부각되고 해결 방향도 명쾌히 정리되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까? 이쪽저쪽에서 시도한 절충들, 혹시나 하며 오가던 타협들, 이지저리 탐색되던 가능성들이 무효 처리된 채, 이제는 딱 하나의 해답만 남는다. 최남수씨 퇴진.

YTN 신임 사장 최남수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당사자는 아직까지 절대 사장직을 내놓지 않겠다는 태세다. 고대영과 나는 달라. 쉽게 잡은 기회,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테야. YTN 방송노동자들의 시위에 막혀 회사 출입조차 못하지만, 그는 사장직의 현실·현실의 사장직을 악착같이 고수한다. 자기생존, 직위존립을 위한 노력들도 포기하지 않는다. 성명을 내고, 인터뷰하며, 중재도 부탁하며 분주하다

고집(固執). 뜻을 쉽게 안 바꾸고 생각을 전혀 고치려고 하지 않은 채, 자리를 굳게 지키며 우기다. 딱 그러한 최남수씨에게 과연 문제해결의 대안은 있을까? 그래서 현 대치상태를 다시 또 해소해낼까? 대안(代案). 지금과 같은 고집스러운 우격다짐을 대신할, 국면 타개에 좋은 수가 그에게 남아 있는가? 그렇기만 하다면, 계속해 볼 싸움인데. 끝까지 버텨볼 판인데 말이다.

아뿔싸, 현실은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세는 최남수씨가 원하는 방향대로 전혀 굴러가지 않는다. 그가 더욱 불리하게 몰리는 형세. 유리한 편으로 운용할 선들이 대부분 끊어지고, 운신의 폭이 따라서 확 줄어든 형국이다. 고립무원. 요컨대, 퇴진 외의 대안을 모색하기에 한 마디로 역부족인 상태의 최남수씨다.

성명과 인터뷰, 중재, 그 어떤 기술도 더 이상 유효하게 먹혀들지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그에게는 사장 취임에 쓰임새가 매우 큰 두세 가지 정도의 카드가 있었다. 가장 우선은, 그와 근친하며 그와 직간접적으로 협의했을 YTN 안팎의 실질적 조력자들일 테다. 결정적으로 최남수씨에게 힘을 실어준, 입증할 순 없고 의심과 추측을 사기에 충분한 세력이다

두 번째는, 내부의 숨은 라인이 아닌, 외부와 통하는 선인 매체 활용 전술이다, 구체적으로, 최남수씨는 자기주장과 의사를 주변에 효과적으로 소개·전파하기 위한 인터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내정자 신분의 그는 유력채널 활용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영 실력을 발휘한다. 당연히, 여론을 유리하게 꾸리는 정치다.

“후배들과 세상 보는 관점 다르지 않다.” 혹 하는 발언이 기사 제목으로 오른다. “구성원과 함께 촛불민심 방송으로 실현”할 거라는 그를 누가 계속해 매정하게 비토 놓을 수 있겠나? 지켜보는 다중은 ‘이런 사람이 대체 뭐가 문제지?’ 판단을 흐리게 되고, 미디어운동장의 선수들은 그런 그를 대놓고 반대·비난하지 못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여론을 조정하고 고립을 회피한다. 임명 반대파를 대안 없는 소수 ‘탈레반’의 프레임 안으로 은근히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최남수씨와 그 주변 세력은 세 번째 문제 해결책까지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 협상과 타협. 특정 방통위원이 SNS를 통해 비공식적이지만 노사타협 메시지를 내놓으며, 언론노조가 공개적으로 양자협상의 물밑 중재역을 떠맡는다.

“YTN 파업위기, 중재로 해결점 찾나?” YTN지부가 중재를 받아들인다. “파국 피한 YTN, 노사 테이블 마련.” 그가 원하던 바다. “파업 문 앞까지 치달았던 YTN, 다시 협상테이블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사협상 타결”이 이루어진다. 최남수씨는 소원하던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폭로된 하자, 확인된 미달의 자격에도 불구하고.

그 후 빠르게 진행된 반전상황을 상세히 복기할 필요는 없다. 곧 ‘보도국장 합의파기’ 논란이 불거진다. 3자 합의 당시의 녹취록이 공개되어 말 바꾼 최남수씨를 치명적으로 타격하며, 분노하고 수치심 느낀 YTN 방송노동자들은 당장 출근저지투쟁에 돌입한다. 유보되었던 79.57% 지지의 높은 파업찬반투표 결과도 함께 공개되었다.

촛불혁명의 잣대에 비춰보자면 도덕적·이념적·정치적으로 부적격인 인물이 자초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였다. 어설프게 봉합되던 모순이 불가피하게 노출되고 첨예한 대치국면으로 재귀한다. 자격미달인 사장 주변 소수 일파와 YTN 재건축을 갈망하는 내부·외 다수 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배후 타협·협상의 정치를 무효화하며 전면적으로 재 노출된다.

최남수씨가 더 이상 어떤 수도 쓸 수 없는 조건. 실제로 사측의 성명은 가당찮은 언설로 취급되고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그가 관련매체를 상대로 재시도하는 인터뷰는 어떤 공감도 얻지 못한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무의미한 독백으로 그친다. 오히려 말 바꿈에 질린 기자들은 그의 비도덕성 폭로에 집중할 것이며, 드러난 내용은 대중을 더욱 기막히게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지난 8일부터 최남수 사장 퇴진을 목표로 최 사장에 대한 출근저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잘못했다 시인하고 죄송하다 반성하지만, 좀 채 수습되지 않을 여론악화. YTN의 투쟁 결기는 강고해지기만 한다. 언론노조위원장, YTN사장추천위원 그 누구도 재조정 요청에 응답하지 않는다. 언론노조는 오히려 그를 김호성 상무 등과 함께 검찰에 고발했다. 퇴진총력투쟁을 선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유력자가 다시 대놓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카드도 쓸 수 없는 처지에서, 내부에서의 정당성과 외부로부터의 신뢰성을 동시에 잃은 최남수씨는 정치력을 상실한 채 무늬만의 사장으로 급락한다. 형식상의 사장직만 유지하게 된다. 그런 그가 최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기회를 달라고 당부한다. “민주적 방식으로 사장이 된” 자신이 “정의로운 공정방송”을 해 보게 해달라고 역설할 것이다.

“보도국장을 다시 한번 논의하자'고까지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의 조급함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당장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꺼내는 말들이, 그럴듯한 다짐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호소와 설득, 심지어 겁박의 언어 그 어떤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말 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신뢰감이 무너지고, 정당성이 의심받을 때다. 정치력 퇴패의 순간이다.

대중은 믿음의 배신을 혐오한다. 권력에 대한 여론의 절연. 그 무서운 심판대에 오르는 순간, 어떠한 권력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어떤 정치적 묘책, 경영적 술책도 먹히지 않으며, 행사되지 못하는 권력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해체된다. 대중은 이 냉혹한 판단력으로써 일국의 대통령, 조직의 수장에 반한다. 정확히 YTN 최남수씨가 처한 신세다. 정치적 파경.

어떻게 할 것인가? 민심의 반항을 무시했던 박근혜는 감옥에 갔다. 민심을 거역한 김장겸·고대영의 체제는 빠르게 해산 중이다. 이런 현실에서, 시급한 재건축 대상인 YTN의 최남수씨는 여전히 ‘나는 그들과 달라!’며 사장직을 고수할 텐가? 내 말 좀 들어 달라 하소연 할 것인가? 누구에게? 그 공허한 외침 외에 용기를 내 택할 대안은 없는가?

촛불혁명은 권력의 의지에 냉정한 책임을 물었다. 신뢰받지 못하는 권력의 퇴출. 중대 결심의 순간이다. 최남수씨는 허위의 사장직에 집착할 텐가? 통하지도 않을 또 다른 수를 고심하는 구태의연함 대신에, 전혀 새로운 틀로써 YTN을 쇄신하라는 촛불혁명의 대의에 승복해 자신의 명예까지도 지켜내는 대안 외에 그 어떤 대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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