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놓고 보면 참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잘 싸웠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4일 새벽(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선전했습니다. 비록 후반 41분, 헤수스 나바스에게 선제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0-1로 패하긴 했지만 최근 4년간 단 1패만 기록한 스페인을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 경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 축구의 완패를 예상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둔 듯 허정무 감독 역시 "크게 지더라도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 축구는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때로는 역습에 의한 날카로운 공격을 시도하며 스페인의 골문을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박주영과 이청용의 콤비플레이에 스페인 수비진은 당황하기도 했고, 기성용과 김정우 등 중앙 미드필더들의 중거리 슈팅 역시 위협적인 모습이 2-3차례 정도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게임을 풀어가지 못한다고 판단한 스페인의 델 보스케 감독이 후반 중반, 다비드 비야, 차비 에르난데스, 사비 알론소 등 주전 선수를 모두 투입하는 카드를 쓸 만큼 한국 축구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수비조직력이 크게 무너지지 않은 것이 좋았습니다. 지난 벨라루스전에서 곽태휘의 부상 이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포백 수비는 이날 이영표의 리드를 바탕으로 협력 수비, 압박에서 괜찮은 플레이를 보이며, 3월 코트디부아르전, 지난달 일본전에 이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김정우, 기성용, 김남일 등 중앙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두터운 수비벽을 구축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덕에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났던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했습니다. 몇 차례 선수를 놓친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좋은 수비력을 보였고,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단 1실점으로 막아내며 효과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 4일(한국시간) 새벽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스페인의 평가전에서 이청용이 스페인 페드로 로드리게스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경기 내적인 면에서도 성과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번 경기에서 허정무호가 얻은 수확은 바로 자신감을 얻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비교적 선전하는 경기를 펼치면서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할 팀과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스페인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전에서 해볼 만 하다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지난 2002년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과연 우리 선수들이 어떤 경기를 이 경기에서 보여줄 지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분명히 성과가 있었지만 그런 반면 과제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력의 핵, 박지성(맨유) 없이 공격의 실마리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한 부분은 본선에서 적지 않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걱정거리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술, 엔트리 실험 등을 이유로 박지성은 코트디부아르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풀타임을 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전에서는 경미한 허벅지 부상으로 결장했습니다. 박지성 없는 경기를 원활하게 펼치기 위해 허정무 감독은 염기훈(수원), 김재성(포항) 등을 투입하는가 하면 전술 자체를 바꿔 다양한 실험을 선보이며 '플랜B' 해법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만큼 실마리를 풀어나갈 선수가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주요 선수의 부상, 퇴장 등 주요 변수에 대비한 보다 조직화된 훈련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역습을 전개할 때 자주 흐름이 끊겼던 것도 아쉬웠습니다. 특히 나바스 실점 상황이 이청용이 중원에서 곧바로 역습을 전개하려다 실패하면서 빚어진 것이어서 뼈아팠습니다. 설령 최전방으로 연결이 됐다 해도 박주영, 안정환 등 최전방 공격수들이 골결정력, 마무리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인 것은 역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침착하고 대담한 플레이가 공격수들에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밖에도 세트피스에서 또 한 번 미숙한 점을 보였던 점과 빠른 원터치 패스플레이에 몇차례 흔들렸던 부분은 본선에서 드러나서는 안 될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결과는 졌지만 충분히 소득이 있는 경기였습니다. 이번 마지막 평가전을 끝으로 허정무호는 결전의 땅, 남아공으로 이동합니다. 잇따른 평가전에서 얻은 성과와 과제를 면밀히 분석해서 그리스전까지 남은 8일동안 빈틈없는 준비로 후회없는 플레이를 본선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많은 팬들은 이기고도 찜찜한 경기보다 지고도 이겼다는 기분이 드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합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쾌한 도전'을 펼치는 허정무호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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