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의 잇따른 구속으로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5시 30분 자신의 대치동 사무실에서 언론을 상대로 한 입장발표에 나섰다. 애초 5시로 약속되었지만 30분이 연기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집사격인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 등 측근들의 구속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한 마디의 해명이나 부인 없이 정치보복과 보수 궤멸이라는 프레임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만 드러냈을 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어차피 측근들의 진술로 인해 이제는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새삼 “나에게 물으라”는 동어반복을 입장이라고 내놓은 것은 그만큼 이 전 대통령의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국정원 특활비의 경우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진술로 구체화된 것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는 원 전 원장이 특활비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한 것이다. 다스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이 전 대통령의 연관을 부인했던 김성우 전 다스 사장도 최근 과거 진술이 거짓이라는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측근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입장발표 후 사무실을 나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질문하라고 하셨는데 검찰 수사에 응할 수 있다는 의미십니까?”라는 질문에 반응 없이 차량에 올라탔다. 결국엔 “나에게 물으라”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는 해석을 피할 수 없다. 결국엔 입장발표는 정치보복과 보수 궤멸이라는 프레임 구축을 위하 일방적인 선언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단 수사적으로는 측근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에게 물으라는 보스의 품격을 강조했으나, 실질적으로 이 전 대통령이 노린 것은 보수 지지층의 결집이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더불어 다스나 국정원 특활비 등 구체적 단어들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것은 향후 있을 수 있는 검찰 조사를 대비한 몸 사리기라는 시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송구하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그 송구한 이유에 대해서조차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 이번 입장표명의 진정성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법원에 의해 구속된 측근에 대해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포장한 것도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번 출국하면서 밝힌 정치보복 프레임에 보수 궤멸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한 수준에 그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팩트가 아닌 주장만으로는 궁지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측근들의 구속과 더불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이 돌출하는 상황에 내놓은 입장발표라는 것은 명분 없는 정치보복 주장에 그쳤으며, 그것은 곧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일 참모진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상황을 돌파할 수단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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