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EBS <시네마천국>의 한 장면이다.

50분 내내 모르는 영화 얘기만 한다. MC들의 얼굴도 낯설다. 그 뿐인가? 어정쩡하게 떨어져 앉아있는 모습이 어색해 보인다. 세트 배경도 칙칙해서 MBC <러브하우스>에 보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시네마천국>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사실 EBS <시네마천국>으로 채널을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어쩐지 어려울 것 같았고, 그러니 당연히 재미없는 줄 알았다. 따라잡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꾸역꾸역 보고 있는 것은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맨 처음 채널을 돌리게 만든 주인공은 타사 지상파 방송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이었다. 여전히 재미나게 만들고 있지만 매체환경이 변하다 보니 새로운 맛이 떨어지고 있다.

케이블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서 새 영화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접하고 있는 점이 일단 제일 크다. 다른 요인은 구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프로그램마다 있는, 두 영화를 비교해서 분석하는 코너는 동시에 똑같은 영화를 다룰 때도 있어 시청자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사이 <시네마천국>은 지속적으로 변신을 노력했다. 현재는 변영주, 김태용, 이해영 감독이 나와서 영화에 대한 수다를 떠는 방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적응을 하기 시작하니 재미에 가속도가 붙는다. 형님같은 언니 변영주 감독 앞에서 언제나 몸을 사리는 김태용, 이해영 감독을 보는 재미가 좋다. 곱상하게 생긴 김태용 감독이 조근조근 할 말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관전포인트다. 겉모습은 터프해 보이는 이해영 감독이 너무나 섬세한 감성을 드러내는 순간도 놓치면 아깝다.

방송은 '더 인터뷰' 코너에서 영화인들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나면, '상상의 역전, 불멸의 B무비' 코너에서 영화를 소개하고, 매회 하나의 주제를 갖고 세 감독이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4일에는 김형구 촬영감독을 만났고, 애니메이션 <톰썸의 비밀모험>을 소개했다. 감독들의 시간의 주제는 '길 위에서 꿈을 꾸다'였다.

세 감독이 나오는 시간의 진짜 코너명은 '당신이 영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던'이다. 영화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프로그램이 해소해 주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공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다'라고 답해야 바른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평소 접하지 않았던 영화들까지도 거부감 없이 보게 만드는데는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난감한 순간들이 자주 발생한다. 감독들은 너무나 신나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라고 말하는데 처음 들어본 영화가 많다. 혹은 이름은 들어봤어도 내용은 모르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이때 자막에서 설명을 해주곤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자막을 아예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쓴다는 느낌으로 써서 감독과 시청자의 거리를 좁혀주는 방식으로 써도 괜찮을 듯하다. 현재는 감독들의 가벼운 대화에서는 PD가 화자가 되어 대화에 끼어들며 감독들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방식의 자막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는 너무 무게가 들어가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방송을 보고 있으면 감독들의 입에서 나온 영화들을 모두 찾아보고 싶어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TV에서 그렇게 '타인의 취향'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적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영화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흥행작 위주로만 다뤄지고 있다. 흥행작에 대한 평가도 다르고, 다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 목소리들을 골고루 듣지 못한다.

아울러 영화감독들이 갖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애정, 걸작에 대한 컴플렉스, 작품에 대한 스트레스들을 알 수 있어 반갑다. '무릎팍 도사'가 아니면 TV에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본방송은 매주 금요일 밤 10시50분~11시40분, 재방송은 매주 일요일 오후 1시30분~2시20분에 볼 수 있다. 인터넷 '다시보기'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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