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사랑의 매', '매를 번다', '회초리' 등 각종 미디어에서 체벌을 옹호하는 표현이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발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 신문부터 포털 콘텐츠,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체벌 옹호 표현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2017년 한 해 동안 미디어 체벌 옹호 표현에 대한 제보를 받고 해당 주체에 시정 요구를 해온 사례보고서를 발간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사랑의 매'와 같이 체벌을 사랑과 훈육으로 연결시키는 표현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체벌은 아동복지법을 위배하는 행위다. 체벌을 문제로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희화하는 내용을 방영하는 일은 법이 제지하는 행위를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체벌은 장단점을 비교하여 허용 여부를 토론할 주제가 아니라 근절해야 할 행위"라고 강조했다.
JTBC <아는형님> 2017년 2월 27일 방송 캡처(세이브더칠드런)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은 지난해 2월 27일 방송에서 학교를 배경삼아 체벌을 '사랑의 매'로 희화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러한 배경에서 게임의 벌칙이 '사랑의 매'로 희화되는 경우 교내 체벌뿐 아니라 학생 간 괴롭힘이 폭력이 아닌 장난으로 둔갑할 수 있다"며 <아는 형님>제작진에 항의 공문을 발송했지만 현재까지 회신이 없다고 밝혔다.
JTBC<아는형님> 2017년 2월 27일 방송 캡처 (세이브더칠드런)
지난해 1월 6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매'를 '엄마의 사랑'이라고 언급한 패널에 대해 "체벌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제보도 접수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SBS 예능본부와 프로그램 제작진에 항의 공문을 발송했으나 이 역시 회신이 오지 않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결과 "체벌을 옹호하는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답변이 왔다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체벌은 아이를 사랑해야할 바로 그 사람이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사랑에는 폭력이 포함되며, 이러한 관계에서 폭력은 정상적'이라고까지 받아들이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랑의 매'와 관련해 정치권의 표현들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 비판에 대해 "회초리 든 마음을 안다"고 표현했다. 국민의당은 최근 '국민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라는 문구와 함께 회초리 이미지를 당 대표실 배경막으로 사용했다.
국민의당 당 대표실 배경막(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은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가 회초리를 자녀의 잘못을 깨닫도록 돕는 도구로 여겨왔기 때문에 체벌을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회초리'라는 통념이 존재한다"며 "그러나 대한민국 아동복지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비유로나마 사용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주요 정당 중 한 곳으로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맞을 만한 짓을 했다', '매를 번다' 등 폭력을 정당화하는 표현들도 다수 등장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매를 번다'거나 '맞을 짓'이라는 표현은 체벌의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잘못된 말"이라며 "아동으로 하여금 체벌을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폭력에 저항하기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와 같은 사례들에 대해 25곳에 시정을 요구했고 그중 9곳이 문제된 표현을 바로잡거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일부 주체들은 '지적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민감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시인했지만 회신 자체를 안 한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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