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프리랜서 촬영감독의 체불 임금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해 '방송갑질' 논란에 휩싸인 SBS가 중소매체 단독 보도를 가로채 새로운 '갑질' 논란이 제기된다. SBS는 지난달 이미 한 중소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을 '단독'이라며 보도했다. 이러한 SBS의 행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갑질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11일자 SBS 보도. (사진=SBS 보도 캡처)

2017년 12월 레진코믹스는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7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 글에는 웹툰작가들에 대한 레진코믹스의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SNS 상에서도 레진코믹스 논란에 대한 각종 폭로가 이어졌고, 레진코믹스가 작가 블랙리스트까지 운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에 복수의 매체가 취재에 돌입했다. 청원 이후 12월 한 달 동안 작성된 관련 기사만 11건이다. 전자신문, ZD넷코리아, 디지털데일리, 게임톡, 문화뉴스, 비즈한국, 아이즈, 웹데일리, 일요시사, 디지털타임즈, 브릿지경제, 위키트리 등이 12월에 관련 내용을 기사로 다뤘다.

특히 일요시사는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구설의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기도 했다. 12월 21일 <[단독]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추적> 기사에서 일요시사는 "지난 5월 레진 내부서 작가 두 명을 블랙리스트로 지목한 정황이 발견됐다"면서 "일요시사가 확인한 내부 정보에 따르면 레진은 당시 운영팀 구성원들이 참여한 일간 회의서 '앞으로 진행될 모든 이벤트서 미치, 은송 작가의 작품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일요시사는 레진코믹스 내부 이메일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22일자 일요시사 보도 일부. (사진=일요시사 보도 캡처)

해당 보도는 파급력 있게 퍼져나갔다. 일부 언론은 일요시사의 보도를 인용했고, 일부 언론은 작가들의 SNS를 인용해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레진 불공정행위 피해작가연대' 소속 작가들과 독자 100여 명이 레진코믹스 논현동 사옥 앞에서 블랙리스트 해명을 요구하며 개최한 집회는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됐고, 실제로 다수의 보도가 쏟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1일 홀로 돋보인 매체가 있었다. 지상파 3사 중 하나인 SBS다. SBS는 8시 뉴스에서 <[단독] "레진코믹스, 작가 항의하면 블랙리스트로 관리"…증거 입수> 리포트에서 자신들이 블랙리스트 증거를 입수했다며 '단독'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SBS는 "SBS가 입수한 회사 내부 이메일"이라면서 "회사의 방식에 항의한 작가 이름과 작품을 적어놓고 앞으로 작품을 노출하지 말 것을 대표 명의로 지시한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SBS가 입수했다는 증거 이메일의 내용은 이미 지난달 22일 일요시사가 보도했던 내용이었다. SBS가 방송 화면으로 보여준 이메일 일부를 살펴보면 "앞으로 진행될 모든 이벤트에서 '은송', '미치' 작가의 작품은 노출하지 않습니다. 레진님이 별도로 지시하신 사항입니다"라고 돼있다. 일요시사 보도와 일치한다.

▲11일 SBS가 공개한 이메일. (사진=SBS 보도 캡처)

결국 SBS가 일요시사의 단독보도를 가로챈 셈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둘 중에 하나다. SBS 기자가 기존의 관련 보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제목의 '단독'을 달았거나, 알고도 중소매체를 무시하고 단독이라고 보도하는 경우다. 어느 쪽이든 문제다. 한 대형매체에 근무하는 기자는 "중소매체 기사 중에도 좋은 기사가 꽤 있어서, 아이디어를 얻어 취재를 할 때도 있다"면서 "그런데 데스크에서 '이거 단독이냐'고 묻고, 중소매체 보도라고 대답하면 '그냥 단독 붙여서 내보내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태와 관련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가 된 내용에 대해 단독을 붙이는 것은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시청자와 독자를 속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시청자들은 SBS가 단독으로 보도한 것으로 알 것"이라면서 "시청자와 독자 입장에서는 이 언론사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관련 기사를 계속해서 단독 보도한 언론사에 팔로우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진봉 교수는 "SBS처럼 큰 방송사가 중소매체가 취재한 내용을 가로챈 것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성과물을 본인들이 개발한 것처럼 하는 것과 유사한 행태"라면서 "대기업이 갑질해서 중소기업 착취한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상도덕에도 어긋나고, 언론윤리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