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적응은 남아공 월드컵의 최대변수다. ⓒ KFA
[피치액션 l 안경남] “부진했다”는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대변되는 경기였다. 벨라루스전에 나선 선수들은 며칠 전 한일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태극전사들이 아니었다. 달라진 환경과 바뀐 시차로 인해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멤버 구성의 문제나 잔디가 긴 문제가 있었지만 다수의 선수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만족할 게 하나도 없는 경기였다” - 허정무 감독 -

“고지대 적응 때문에 조금 힘든 경기였다. 컨디션 난조가 있었다” - 박지성 -

선발 라인업은 지난 한일전과 비교해 5명의 변화가 있었다. 이운재가 골문을 지킨 가운데 박주영이 오랜만에 선발 출전해 이근호와 짝을 이뤘고 김정우 대신 신형민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수비에선 김동진이 왼쪽 풀백에 배치됐고 조용형과 곽태휘가 에콰도르전에 이어 또 다시 호흡을 맞췄다. 허정무 감독의 의도는 크게 3가지였다. 벨라루스전을 통해 1) 박주영과 이근호의 호흡, 2) 신형민의 검증, 3) 조용형과 곽태휘 조합을 최종 실험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박주영과 이근호의 날카로움은 기대 이하였고 신형민은 수차례 실수를 범하며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다. 또한 곽태휘는 무릎인대가 파열되며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다수의 변화가 있었던 선발 라인업과 달리 전술적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4-4-2와 4-2-3-1을 동시에 사용했던 이전의 평가전과는 달리 경기 내내 4-4-2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 가지 변화는 후반에 교체 투입된 염기훈이 왼쪽 미드필더로 나섰다는 점이다. 최전방 공격수에서 다시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온 셈이다. 염기훈의 포지션 컴백은 허정무 감독이 본선 무대에서 상황에 따라 염기훈을 최전방과 측면에 적절히 기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김보경 보다 염기훈의 최종 엔트리 발탁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날 대표팀은 벨라루스전에서 4-4-2 시스템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줬다. 중원에 기성용과 신형민 두 명의 미드필더가 배치됐는데 잦은 패스 미스와 볼터치 실수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원인이 됐다. 특히 신형민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갖춰야할 안정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드리블은 길었고 상대 압박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원이 흔들리자 공수의 밸런스도 무너졌다. 공격과 수비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며 볼 점유율을 높이는데 실패했고 볼의 전개 속도 또한 떨어졌다. 전방부터 압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 박지성을 비롯해 공격수 대부분의 몸이 무거웠고 이로 인해 압박이 느슨해지며 중앙의 기성용과 신형민에게 과부하가 걸렸다. 투톱이 부진할 경우 중앙이 헐거워지는 4-4-2 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난 셈이다.

“오늘 한국은 전혀 날카롭지 않았다. 남아공 월드컵이 얼마나 힘든 대회인지 알았을 것이다” - 베른트 슈탕게 벨라루스 감독 -

한 가지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날의 패인으로 지목된 컨디션 문제다. 사실 유럽으로 건너가 곧바로 실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기는 어렵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에서 적응훈련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월드컵에서도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분명 오스트리아와 남아공의 환경은 다르다.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을 갖고 있지만 대표팀이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할 확률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이는 개최국을 제외한 31개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점이다. 한국에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최악의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고의 선수와 완벽한 전술을 갖추고도 현지적응으로 인한 컨디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월드컵 무대에서 성공할 수 없다. 벨라루스전 실패가 남아공에서 약이 되길 바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올 초 대표팀의 남아공 전지훈련 당시 끊임없이 재기됐던 문제가 바로 남아공의 날씨와 고지대 그리고 공인구 자블라니였다. 최종 엔트리와 월드컵 플랜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적응 또한 대표팀이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다.

축구전문블로그 피치액션(http://pitchaction.com)을 운영하고 있다. '축구의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축구광(蹴球狂)시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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