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홈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뒀을 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블로거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아내와 경기를 지켜본 또 다른 태극전사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 표정은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은 기쁨보다 '아, 내가 저기에서 뛰어야 하는데...'같은 진한 아쉬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은 있었기에 그 경기를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의지를 다졌고, 그 때문인지 경기를 바라보는 눈매 또한 비장함이 묻어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는 바로 '골넣는 수비수'로서의 명성을 날리면서 '허정무호의 황태자'로도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 곽태휘(교토)였습니다.
그 경기가 있고 약 7개월 뒤 다시 태극마크를 단 곽태휘는 차근차근 다시 입지를 다져나가며 월드컵 출전을 향한 꿈을 만들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중국전 0-3 참패의 빌미를 제공하며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며 월드컵 본선 직전 3번의 평가전에 잇따라 선발 출장, 허정무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너무나 안타깝게도 단 한 경기에서 터진 부상으로 그동안 쌓은 꿈이 한 번에 무너지면서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축구를 시작했지만 2학년 때 청천벽력 같은 신체적인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축구공에 왼쪽 눈을 맞아 망막이 손상된 것입니다. 12시간이라는 대수술을 받으면서 시력을 회복하려 했지만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고, 한쪽 눈으로 선수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곽태휘는 잇따른 부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놓치며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고3 때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했으며, 대학재학 중에는 어깨 근육을 다치는 부상으로 한동안 제대로 뛸 수도 없었습니다. 이후 프로 선수 생활을 하는 중에는 무릎을 잇따라 다치면서 길게는 10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10여년 동안 부상이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으면서 더 크게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곽태휘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일어서고 또 일어섰습니다. 보란 듯이 FC 서울에 입단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는가 하면 허정무 감독이 전남을 맡던 시절, 최고의 기량으로 FA컵 우승에 큰 역할을 하면서 K-리그에서 실력 좋은 수비수로 거듭났습니다. 그 덕에 국가대표까지 올라서서 수비수임에도 공격 본능을 과시하는 '골넣는 수비수'로서의 명성을 드높였고, 부상 후 모처럼 복귀한 가운데서도 묵묵히 제 기량을 발휘하면서 26명 엔트리까지 올라서는데 성공, 한 단계 한 단계 꿈을 이뤄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진가를 확인한 일본 J리그팀 교토 퍼플상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해외 진출의 꿈도 이루는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월드컵 출전은 어려워진 곽태휘.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 승리, 그리고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역할을 했던 그 당당한 모습만큼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온갖 시련을 딛고 당당하게 일어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그 모습 그대로 월드컵 이후에도 팬들 앞에 당당히 서는 곽태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우리 나이로 30살인 곽태휘의 월드컵 도전이 벌써 끝을 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곽태휘의 미니홈피 메인에 있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가끔 나를 힘들게 만들어도....나는 결코...세상에게..지지않는다...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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