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서 허정무호가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위기에 빠졌습니다. 허정무호 축구대표팀은 30일 밤(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에서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0-1로 패하면서 최근 A매치 연승 기록이 끊어진 것은 물론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잘 한 선수가 없다. 잘 된 것이 없었다"며 이례적으로 혹평한 허정무 감독의 발언처럼 벨라루스전에서 한국 축구는 그동안 쌓였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한꺼번에 드러내면서 지난 2월 중국전 0-3 참패 졸전만큼이나 안타까운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본선에서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났기보다 오히려 평가전에서 미리 드러나 오히려 다행으로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일본전에서 그렇게 잘 뛰었던 선수들이 벨라루스전에서 무딘 경기력을 보이며 이렇다 할 기회를 내지 못했던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번 벨라루스전을 통해서 상승세의 계기를 탔어야 했음에도 또 한 번 '떨어진 경기력'을 새삼 실감하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날 경기에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기성용(셀틱)과 이근호(주빌로 이와타)가 그 주인공입니다.

▲ 이근호(좌),기성용(우) ⓒ연합뉴스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입지는 탄탄했고, 그 입지에 걸맞게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소속팀 사정으로 인한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급격하게 폼이 떨어졌습니다. 스코틀랜드 리그 명문팀, 셀틱으로 이적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경기력이 기대됐던 기성용은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경질된 뒤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며 오히려 경기력이 더 떨어졌습니다. 또한 이근호는 지난해 3월 한때 소속팀이 없는 신세를 겪는 등 개인적인 신상 문제가 발목을 잡아 슬럼프가 발생했고, 1년 3개월 넘게 전혀 제 폼을 찾지 못하며 '허정무호의 황태자'다운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 허정무 감독은 끊임없이 기회를 주면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꾸준하게 경기를 뛰다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를 보여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슬럼프이기에 언제 어떤 식으로 나아질 지는 전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더욱 침체된 현재의 모습만 확인한 채 그야말로 중요한 시기에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지난 16일 에콰도르전부터 시작해 일본전, 벨라루스전까지 모두 선발 출장한 기성용은 특유의 날카로운 킥 능력과 매끄러운 경기 운영 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따금씩 찾아온 세트피스 기회는 모두 허공에 날렸고, 동료 선수들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며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나마 잘 이뤄졌던 '쌍용' 콤비 파트너, 이청용(볼튼)과의 세밀한 패스플레이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만큼 기성용의 경기력은 결장했던 경기만큼이나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근호는 더 심각했습니다. 물론 23인 최종엔트리에 들기 위해 벨라루스전에서 정말 많은 움직임을 보였지만 세트 피스에서 날카로운 헤딩슛을 기록한 것 외에는 그다지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특히 빠르고 폭넓은 움직임으로 장신 수비 숲 사이를 누비고 다니길 기대했던 그의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이어진 부진 그대로 이근호는 벨라루스전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당연히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좋은 활약을 보이고 개인적인 가치도 더욱 높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허정무 감독 역시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활약상에 깊은 인상을 받으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기는 축구'를 하기 위해서 최근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을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검토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최종엔트리까지 합류시켜 본선에서도 이들과 함께 한다 할지라도 주축 자원으로 이들을 활용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기력을 놓고 엔트리를 걸러 오며 비교적 '괜찮은 엔트리'를 구성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는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정말 중대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본선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팬들의 기대는 한껏 높은 가운데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에 대한 허정무 감독의 선택이 어떻게 내려질 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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