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청와대는 미리 백악관 식이라고 사전 설명은 했지만, 결과는 그냥 ‘문재인 식’이었다는 후문들이다. 그동안 미리 질문지와 답변이 준비된 상황에서 진행됐던 청와대 기자회견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다만 그것이 화제가 된 것이 오히려 슬픈 과거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이렇게 달라진 기자회견 장면은 그리 오래도 아닌, 지난 정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설(?)적인 기자회견이 겹칠 수밖에 없어 말 그대로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였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대면보고가 필요합니까?”라고 묻고 뒤쪽에 앉아있던 참모들은 대답 대신 어색한 예스맨의 웃음소리만 냈던 그 장면.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BBC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들은 앞다퉈 이렇듯 달라진 대통령 기자회견 분위기를 다뤘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마냥 화기애애하게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10일 JTBC <뉴스현장> 김종혁 앵커 역시 ‘짜고 치지 않는 고스톱’이라는 제목으로 달라진 기자회견 내용을 언급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대통령의 역량이 철저히 포장돼 왔던 참혹한 결과’의 과거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앵커의 결론은 그것이 아니었다. 김 앵커는 “그리고 대통령에게만 뭘 요구할 게 아니라 기자들도 질문 수준 좀 높여주기 바랍니다. 엉뚱한 얘기로 금쪽같은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입니다”라고 언론을 향한 따끔한 촌철살인으로 말을 맺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전부터 기자들이 더 긴장한다는 말이 있었다. 예전처럼 질문과 답변을 미리 짜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기자들 역시 대통령의 신년사를 듣고 즉흥적으로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기자 아니라 누구라도 하지 않던 것을 하려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자유롭게 진행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현장에 참석한 외신기자의 후일담마저 화제가 됐지만 앞서 <뉴스현장> 앵커의 일침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한 국내기자도 있었다.

"트럼프 공은 어느 정도?" 각본 없는 문답 '너도나도' 손 (JTBC 뉴스룸 보도영상 갈무리)

어떻게 보면 기자회견의 본질보다 더 화제가 된 한 기자의 질문은 대통령 지지자들의 댓글문제였다. 기자가 “기사를 좀 편하게 쓰기 위해서” 독자의 댓글을 대통령에게 자제시켜 달라는 요구를 한다는 것이 현장에서는 웃음거리였지만 돌아서서는 참담한 것이었다.

우선 기사 댓글에 대한 불만이 과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던질 만한 질문이었냐는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게다가 이유가 “기사를 편하게 쓰고 싶다”는 것까지 밝혀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 됐다. 악플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그러나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에는 또한 또 다른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자에게만 비판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판이다. 언론이 정치와 권력을 비판하는 것처럼 독자는 기사를 비판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어떤 압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가 되어야만 하겠지만 반대로 독자의 비판에는 겸허하게 귀를 열어야 한다. 독자의 비판이 없다면 언론은 펜을 든 망나니가 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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