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의 위기다. ‘기레기’란 말이 일상화되었다. 기사를 믿지 못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많은 기사에 언론과 독자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믿을 수 있는 기사는 뭘까, 무슨 언론을 봐야 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독자와 언론계 종사자 모두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은 언론학자들이 미디어 공공성 유지와 사회공공성 강화에 기여한 언론과 기사에 주는 상이다. 역대 수상자 내역도 화려하다. PD수첩, 뉴스타파, YTN 노종면 기자, 한겨레 정환봉 기자 등 매년 한국사회와 언론에 큰 영향을 끼친 언론인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8일, ‘제 8회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이 발표됐다. 주인공은 영화 <공범자들>, 시사IN 주진우 기자, JTBC 팩트체크팀 그리고 독립언론 비마이너다. 독립언론의 수상은 비마이너가 최초다.

비마이너는 ‘선감학원’을 심층 취재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미 여러 언론 매체에서 보도했던 사건이지만 비마이너가 상을 받은 이유가 뭘까. 지난 1월 9일 하금철 비마이너 편집장을 만나 이유를 물었다. 수상 이유와 독립 언론의 생존 방법,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비마이너 하금철 편집장(미디어스)

비마이너는 어떤 매체인가

B가 아니다. 비동사 be에 마이너가 합쳐진 말이다. 소수자가 되자는 의미다. 보통 사람들은 비주류가 주류로 편입되는 것이 권리 확보라 말한다. 우리의 입장은 ‘소수자 위치 자체를 인정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 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도 ‘소수자 되기’를 공감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독립언론이 미디어공공성포럼 상을 받은 건 최초다

심사위원회에서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감사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 놀랐다. 이 상은 언론학자들이 심사한 것이다. 독립언론 모델이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영광이다. 그리고 이번 계기를 통해 비마이너가 다루는 소수자 이슈가 알려질 수 있어 좋았다.

수상 소감은

특별한 변화는 없다. 다만 동력이 생겼다. 그동안 독립 매체, 그리고 소수자 매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상은 그 자부심의 근거다. 독립 언론에서 활동한다고 했을 때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시선들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수상을 통해 확실한 자신감이 생겼다.

독립 언론으로 운영 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500명 정도의 소액후원자들이 큰 힘이 된다. 후원자도 늘어야 하는데,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후원자가 줄고 있다. 하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보수를 넘어서는 정신이 기자들에게 있다. 소수자 쟁점에 대해 다른 언론이 다루지 않는 것들 스스로 발굴한다는 자부심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1970년대 선감학원 모습 (비마이너/안산지역사연구소)

선감학원 취재는 어떻게 시작했나

‘시설문제 역사적 기원’ 때문에 이 기사를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소수자 억압 시설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이런 저런 자료 찾다가 우연하게 선감학원을 알게 되었다. 선감학원은 부랑인들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시설이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고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 그런데 관련 논문이 하나도 없었다. 여러 시사보도 프로그램과 언론에서 다뤄지긴 했는데 더 깊게 다뤄보고 싶었다.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른’ 기사를 만들어낸 비결은 뭔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일제 시대 때의 신문부터, 50년대 지역신문까지 자료를 모았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며칠씩 가서 키워드를 찾고 데이터를 정리했다. 정보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도 찾아다녔다. 직접 경기도의회 진상조사 특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노력이 남달랐다. 무엇보다 선감학원 자체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에 있었던 반민주적 국가 운영 핵심이 선감학원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말하는 건가

한국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한국전쟁이 있었다. 그 부산물이 고아, 부랑아다. 이런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그런데 그걸 ‘근대화를 방해하는 사람’이라 여겨 감금했다는 것이 무섭지 않나. 한국 현대사의 폭력성이 선감학원에서 나타난 것이다. 더 끔찍한 건 선감도가 아니라 도시다. 서울역, 용산역, 수원 시내에서 아이들이 잡혀갔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말이다. 구걸, 구두통을 들고 나왔거나 행인 많은 곳에서 껌팔이 했다는 이유로 잡혔다. 우리 사회가 왜 그렇게 잔인해졌는지 말하고 싶었다.

하나의 사안에 총력을 기울이는 독립 언론의 새로운 취재 모델을 개척한 것 같다

난 최초의 언론을 ‘삐라’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을 날것으로, 권력이나 주류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삐라 말이다. 우린 기성 언론과 삐라 중간 지점에 있다. 기성 언론의 경직된 패턴과 유통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것을 추구했다. 그게 취재 결과로 이어졌고, 상도 받을 수 있었다.

선감학원 보도 이후 계획하는 게 있는가

선감학원과 비슷한 작업 할 것이다. 선감학원은 20세기의 일이다. 21세기에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에 부랑인, 정신병자, 노숙인 관리가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제도적으로 진화한 셈이다. 그러나 인권적으로 예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선감학원에서 정신병원, 장애인수용시설로 진화했다. 10년에서 20년 가까이 수용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21세기의 새로운 국가 폭력 체계에 대한 조사나 언론 취재가 거의 없었다. 그런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을 다루고 싶다.

비마이너는 2015년 한국장애인인권상을 받았다 (미디어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소수자의 문제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큰 언론들도 함께 이야기해줬으면 한다. 소수자 삶의 변화를 만들고 싶다. 영향력이 큰 매체들도 같이 말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이 상을 받아서 당당하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웃음)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취재를 위해 사무실로 급히 올라갔다. 독립언론 비마이너는 계속해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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