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는 축구계에서 별다른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하고 재치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프리카식 축구는 서서히 세계 중심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축구계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인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축구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축구는 희망과 꿈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축구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기를 꿈꾼다고 합니다. 그래서 디디에 드로그바, 사무엘 에투 같은 유명한 축구 선수들은 많은 어린이들의 우상처럼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축구, 그리고 월드컵에서 아프리카는 어떻게 해서 부쩍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사상 처음 월드컵을 치르게 될 아프리카가 거둘 수 있는 성과는 얼마 정도나 될까요.

시작은 미약했지만 과정은 창대했던 아프리카의 월드컵

월드컵이 열린 지 44년 만인 1974년, 아프리카는 자이레라는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국가를 통해 역사적인 월드컵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전까지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아프리카에게 1장의 출전권이 주어지자 24개 나라는 월드컵 본선을 향한 노크를 했고,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자이레가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한 팀이었던 자이레에게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군부 독재자 모부투는 자국 감독이 유고인이라는 이유로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 전 감독을 경질하는 '기이한 간섭'을 했습니다. 정부가 운영한다 해도 선수에 대한 격려는커녕 오직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만 급급했던 자이레에 대한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유고인 감독에서 군 출신 체육부 장관을 감독으로 벤치에 앉혔지만 0-9로 대패하자 또다시 다른 사람으로 감독을 바꾸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3전 3패, 무득점 14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고 대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첫 경험을 한 셈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팀이 월드컵은 물론 세계 축구를 호령할 만 한 대륙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선전을 기초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 아프리카 축구는 다른 제3세계가 보여주지 못한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며 희망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튀니지를 시작으로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알제리가 우승 후보, 서독에게 2-1 승리를 거두면서 아프리카 축구는 조금씩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알제리는 서독과 칠레에게 2승을 거둬 세계 축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그리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잉글랜드를 2위로 내려앉히는 파란을 일으키며 1승 2무, 조 1위로 사상 처음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튀니지부터 시작해 알제리, 모로코까지 북아프리카 팀들의 월드컵 선전은 모든 아프리카 팀들에게 할 수 있다는 크나큰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들의 성과가 마침내 최고 수준으로 꽃피울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니폼니시 감독이 이끌던 카메룬 대표팀이었습니다. 대회전까지만 해도 다크호스이기는 했지만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리 많지 않았던 카메룬은 개막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는 파란을 일으키면서부터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루마니아까지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고, 남미 강호 콜롬비아마저 연장전에서 2-1로 이겼으며 8강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8강전에서 만난 잉글랜드와도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2-3으로 아깝게 패한 카메룬은 당시 월드컵 역사상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아프리카 축구를 세계 중심으로 발돋움시킨 첫 번째 아프리카 국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때부터 세계는 아프리카 축구의 저력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축구는 유럽, 남미의 '양 강 구도'를 깰 가장 강력한 대륙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4, 98년에는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가 세계적인 강호들을 모두 물리치고 연속 조 1위로 16강에 올라 주목받았고, 2002년에는 처음 출전했던 세네갈이 프랑스를 개막전에서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8강까지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어 2006년에 유럽, 남미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가나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16강에 올라 아프리카 축구의 자존심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1978년 이후 아프리카 축구는 매년마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여전히 충분하다는 점을 세계 축구에 강하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로저 밀러 (사진-FIFA)

월드컵을 빛낸 아프리카 스타들

월드컵에서 빛난 아프리카 축구 스타도 카메룬의 월드컵 8강을 기점으로 잇따라 쏟아져 나왔습니다.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곧바로 유럽 유수 클럽들의 스카우터들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는 정도로 상당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3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 나선 로저 밀러(카메룬)는 월드컵이 낳은 최초의 아프리카 스타입니다. 골을 넣은 뒤 아프리카 전통 춤을 추는 세레모니로 이름을 날렸던 밀러는 이 대회에서만 4골을 터트리며 카메룬은 물론 아프리카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어 4년 뒤, 42살의 나이에도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룬 밀러는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월드컵 통산 최고령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카메룬에 밀러가 있다면 두 번의 월드컵에서 연속 16강에 오른 나이지리아에는 은완코 카누가 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첫 선을 보인 카누는 나이지리아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이미 1996년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첫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유연한 몸놀림에 타점 높은 공격력을 자랑했던 카누는 34살의 나이에 이번 남아공월드컵에도 참가해 실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습니다.

세네갈을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고, 최고의 실력으로 8강까지 오르는데 큰 역할을 한 엘 하지 디우프도 월드컵을 빛낸 아프리카 스타로 꼽힙니다. 당시 앙리 카마라, 부바 디우프 등의 동료 선수와 함께 화끈한 공격력의 한 축을 맡았던 디우프는 카메룬에 이어 두 번째로 아프리카 대륙 8강을 이끌며 한동안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 디디에 드로그바

왜 아프리카는 강해졌는가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아프리카 출신 선수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올 시즌 우승을 차지한 첼시 FC를 보면 코트디부아르 출신 디디에 드로그바를 비롯해 나이지리아의 존 오비 미켈, 가나 출신의 마이클 에시엔 등 다양한 아프리카 국적의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4-5위권 리그로 가면 더욱 심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아프리카는 10-15년 사이에 유럽 축구에서도 매력적으로 느낄 만큼 강해진 것일까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필자 생각에는 유럽과 남미가 갖고 있는 특성을 아프리카 축구가 동시에 갖고 있기에 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상 유럽은 파워, 남미는 개인 기술이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선수들이 하루 종일 맨발로 볼을 차다보니 개인기가 기본적으로 뛰어나고, 흑인 특유의 탄력과 스피드를 통해 파워풀한 플레이도 갖춘 선수들이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충분히 어떤 선수들 앞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이 무한하고, 이에 매력을 느낀 유럽 유수 클럽의 스카우터들이 너도 나도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유럽 클럽들이 기회를 준다는 것은 서로 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선수는 팀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돈도 벌 수 있는 부분에서, 반대로 팀은 선수의 좋은 부분을 비교적 싼 몸값에 데려와 전력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서 '윈-윈(Win)' 효과를 냅니다. 그밖에도 타고난 신체적 능력, 유럽 진출에 있어 언어적 장벽이 없는 장점 역시 아프리카 축구가 세계에 통할 수 있게 된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사상 첫 아프리카 월드컵, 아프리카는 해낼 수 있을까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월드컵에는 아프리카에서 내로라하는 강팀들이 모두 출전합니다. 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나,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4용(龍)'이 모두 출전하고, 개최국 남아공과 북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알제리까지 모두 6팀이 새로운 역사를 꿈꾸며 마지막 담금질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4용'이 벌일 자존심 싸움은 월드컵을 바라보는 재미를 더욱 돋울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 집중됩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4용에는 저마다 스타로 내세울 수 있는 선수들이 포진돼 있기 때문입니다. 코트디부아르에는 걸출한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가 있으며, 카메룬에는 역시 세계 최고 공격수 가운데 하나인 사뮈엘 에투, 가나와 나이지리아에는 첼시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마이클 에시엔과 존 오비 미켈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별들이 모두 나오는 셈입니다.

그밖에도 개인기와 조직력을 골고루 갖추며 16강 이상의 성적을 예상하는 팀들이 많아 사상 처음으로 2팀 이상의 아프리카 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력만 놓고 보면 카메룬, 세네갈이 거둔 8강 이상의 성적도 낼 수 있어 결과도 주목됩니다.

유럽과 남미로 양분화 되어 있던 축구 정세에 아프리카는 '반란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홈과 다름없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아프리카는 과연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주인공으로 또 한 번 거듭날 지 분명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이 아프리카에게는 큰 기회이며, 세계 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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