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런저런 이유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드라마 <하얀거탑>, <외과의사봉달희>, <히트>, <에어시티>, <개와 늑대의 시간>, <로비스트>, 그리고 최근 방송을 시작한 <뉴하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작품성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드라마와 두 마리 모두 놓친 드라마를 포괄하는 핵심은 '전문직드라마'이다. 2007년도 드라마는 사극, 전문직드라마, KBS1 TV 일일연속극의 강세로 정리할 수 있다.

사극과 일일연속극 강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타난 경향이기에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전문직드라마는 2007년 초반의 <하얀거탑>에서 2007년 12월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의 세계를 그린 <뉴하트>로 이어지면서 침체에 빠진 멜로드라마 중심의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새로운 활로로 평가받고 있다. 더 나아가 전문직드라마가 2008년 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전문직드라마가 뭐지?

▲ MBC <뉴하트> ⓒMBC
전문직드라마는 이른바 '전문직' 종사자를 통해 일반적으로 알기 어려운 전문직의 세계를 극적으로 구성한 드라마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전문직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에는 일반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극적 요소들이 많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지식을 무기로 특화되어 있는 전문직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경우가 많고, 전문직드라마는 바로 이 같은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편일률적인 삼각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멜로드라마에 질려 있는 시청자들에게 전문직드라마가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직드라마가 여전히 청춘남녀의 애정구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다보니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가 의학드라마라고 비아냥거릴 정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전문직드라마가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직드라마가 2007년도 드라마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의학전문드라마를 표방했던 <하얀거탑>의 성공 때문이었다. 외과의사 장준혁의 야망을 중심으로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냉정하게 그림으로써 '의사들의 연애 이야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학전문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하얀거탑> 이후 전문직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전문직드라마가 2008년에도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측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다. 2008년 초 방송을 목표로 준비 중인 드라마 가운데 방송사 보도국 기자의 세계를 다룬 <스포트라이트>와 드라마제작국의 PD와 작가, 연기자, 매니저들의 삶을 다룬 <온에어>가 전문직드라마의 계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이지만, 두고 볼 일이다. 기자, 드라마 PD, 작가, 연기자, 매니저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전문직이다. 이런 까닭에 기존의 드라마에서도 이들 직업은 '기획실 실장님'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자주 등장했었다.

그런데 기존의 드라마를 전문직드라마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전문직'이 아니라 '이색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 드라마에서 '전문직'이 극적 환상을 담보하기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MBC <하얀거탑> ⓒMBC
아직 방송을 시작하지도 않은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서둘러 이야기하는 것은 <스포트라이트>와 <온에어>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시청률'을 둘러싼 생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방송계 종사자의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진짜' 전문직드라마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동안 <하얀거탑>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와 같은 의학전문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전문직드라마를 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 것이다.

전문직드라마의 경우,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의학법정수사' 분야의 전문직드라마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많은데 유독 '의학법정수사' 분야가 호응을 얻는 것은 병원이나 법정, 범죄 현장 등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이며, 따라서 그만큼 극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드라마는 '의학'이나 '수사' 분야의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는 비교적 폭넓은 호응을 받은 반면에 법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신통치 않았다.

▲ SBS <외과의사 봉달희> ⓒSBS
예를 들면, 1990년대 <종합병원>에서 2007년의 <뉴하트>에 이르는 의학드라마와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수사반장>에서 2007년의 <히트>에 이르는 수사드라마가 크게 성공한 반면, 2005년 방송되었던 <변호사들>의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한국은 미국처럼 배심원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의 구형과 변호사의 변론, 그리고 판사의 판결로만 이루어지는 한국의 법정에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극적인 재미를 주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 법정도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기 한 만큼 앞으로 제대로 된 '법정드라마'를 기대해볼 만하다.

소재주의가 아닌, 그래서 이색적이 아니라 참으로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문직드라마가 한국드라마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직의 세계를 극적 개연성에 근거하여 현실감 있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전문직드라마가 천편일률적인 한국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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