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난데없이 영화 1987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후안무치한 궤변"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발단은 자유한국당 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였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절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종철 고문치사 영화를 보고 울고 있더라"면서 "그 진실을 누가 밝혔냐. 보수가 밝힌 것 아니냐. 대통령이 왜 우느냐"고 주장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1987 소유권 주장에 합류했다. 김 원내대표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1987을 감상했다고 한다. 1987년은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요한 결절 지점이자 역사적 자산"이라면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눈시울 적시는 모습을 연출하며 이 영화가 자신들의 영화인 것처럼 포장해야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인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에 출품된 사진. 서울역 앞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와 진압하는 경찰. 1987년 구와바라 시세이 작품. (연합뉴스)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재학 중인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에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6월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사건 발생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강민찬은 "냉수를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는데, 박종철 군의 친구 소재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 경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의 의혹 제기 등으로 치안본부는 고문 사실을 시인했고, 수사경관 조한경, 강진규가 구속됐다.

이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군을 고문한 경찰관의 이름을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 비서실 등과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사건 은폐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두환 정권은 치명상을 입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2월 출범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7월 최종 보고서를 내고 국가에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세력이 누구이며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세력이 누구인지 논쟁의 여지가 없다.

9일 오전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어제 자유한국당에서 영화 1987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에 대해 참으로 후안무치한 궤변이란 말씀을 드린다"면서 "어떻게 고문치사를 가한 정권이 하루아침에 진실을 규명한 정권으로 미화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역사의 왜곡과 뒤집기를 버젓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박종철 열사가 벌떡 일어나 통곡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수석은 "아무리 그 시절 영화가 대박이 나서 곁다리 홍보와 무임승차를 하고 싶더라도 지금은 소유권 주장을 운운할 때가 아니라 진정한 참회와 반성 그리고 사죄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박홍근 원내수석은 "가해자들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유체이탈 화법과 아전인수식 주장으로 물타기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영화에 대한 국민의 환호와 대선에서 국민의 신성한 선택에 대해 무임승차 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꾀하려는 꼼수와 시도는 국민과 역사로부터 준엄하게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른정당도 자유한국당의 영화 1987 소유권 주장에 대해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바른정당은 이종철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1987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오늘을 사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면서 "누구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 자체가 조악한 역사 인식만 드러내는 일임을 자유한국당은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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