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최남수 신임 사장의 이해 못할 행적이 빚은 논란이다. 그는 모든 게 한 사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몇 번의 기자 회견을 통해서다. 그러나 사태의 경과를 지켜본 사람들은 문제를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논란의 원인은 그에게 있으며, 그와 연결된 YTN 안팎의 권세들이 시비의 핵심이다. 누가 꼭 노종면이어야 한다고 우기는가? ‘노종면은 안 돼!’라 고집하는 저들의 이상한 집착증이 문제. 일개 사원에 대해 이상한 콤플렉스, 기이한 강박관념을 지닌 사장은 과연 방송사를, 저널리즘을, 사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 촛불혁명이 초래한 이 진보적 변화 요청의 시대에.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최승호 MBC사장, 박정훈 SBS사장, 장해랑 EBS사장, 최남수 YTN신임 대표이사

방송사 사장 자격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사장(社長). 회사의 우두머리. 조직 업무의 최고 책임자다. 내부 사원들을 대의하는 직역의 존재이며,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능의 위치다. 내부적으로 회사 운영을 책임지며, 외부에 대해서는 조직의 이해관계를 대표한다.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회사경영의 성패는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사장을 어떻게 뽑을 것인지가 회사의 건강성 여부는 물론이고 사회적 책임성과 기여도 정도를 크게 좌지우지한다. 큰 회사 혹은 업체의 사장의 영향력은 단순히 내부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 위상은 심대하다.

우리가 사장 문제에 주목하고 관여하는 까닭이다. 사장 선임의 문제가 사회적인 사안인 이유다. 특히 YTN과 같은 공기업 혹은 공적인 성격을 지닌 방송사의 경우, 자격 갖춘 인물을 사장으로 뽑고 그(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상시적으로 감시·평가하며 만약 무능하고 부정하다고 판단될 경우 서둘러 면직시키는 건 시민의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가 된다. 국가권력이나 정치권, 이사회에 대리 위임할 게 아닌, 노조의 몫이 아닌, 시청자들이 직접 권능을 행사할 정치적인 이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는 바로 그런 식으로 주권이 행사되도록 방송사 지배구조를 바꾸고자 하며 또한 그런 방향으로 방송법 제·개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중이다.

이런 와중인 2018년 초, 최남수는 물론 주요 방송사 사장들의 면면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들의 위치, 그들을 둘러싼 격변과 논란에 관해 비교 정리해 보자. 방송사 사장 비교론. 우선 이야기는 시청자와 전문가들로부터 공히 가장 높은 신뢰를 얻고 있으며 자사를 명실상부 최고의 방송저널리즘 채널로 자리 잡게 한 JTBC 손석희 사장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는 지난 연말 회심의 카드를 던졌다. 따놓은 당상인 MBC 사장직을 마다하고, 현직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윈 윈'의 결과를 얻어냈다. JTBC의 자리를 지키면서 MBC의 변화까지도 만들어낸 것이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더욱 키우는 멋진 승부수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긍정의 미래, JTBC 뉴스에게는 희망의 앞날만 남은 것일까? 과연 손석희 사장은 MBC와 KBS 공영방송이 탐사저널리즘으로 재무장하는, 공정성 측면에서는 결코 만만찮은 YTN까지 가세할 게 틀림없는 2018년 위기국면을 어떻게 돌파해 지금의 위상, 현재의 영예를 지켜낼 건가? 세월호라는 극적인 사건, 촛불이라는 변혁의 정세가 더 이상 아니다. 지방선거와 개헌이라는 다소간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게임의 조건이다. 그 속에서 민주주의 공론 심화의 힘을 계속해 발휘해 낼 수 있을까?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는 변화의 새로움을 내놓지 못하면, 지금의 주도양상은 언제든지 현상유지를 넘어 빠르게 도태상태로 귀결될 수 있다.

다음은 해직언론인 출신으로서 관문을 거뜬히 돌파해 부실하고 부정했던 과거 청산의 역사적 의무를 짊어진 MBC 사장 자리에 오른 최승호 차례다. TV는 물론이고 영화에서조차 최고 저널리스트로서 입증된 그는, 연출능력을 넘어, 프로그램 편성과 조직 경영에서도 탁월한 성과,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MBC가 공영방송으로 거듭 태어나는 데 역시 그가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모두에게 결과로써 확인시켜줄 텐가? 모두가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최근 MBC 뉴스 등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들은 그가 만만찮은 시련, 중대한 실험의 길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갈 길이 한참 멀다. 물론, 그가 택한 고역의 길이다.

더 이상 응원과 격려만이 아닌, 더 많은 질타와 더욱 따가운 비판을 예상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보로서, 그는 촛불시민들이 지목한 진보적 변화에의 기대에 신속히 부응해야 할 것이다. 숙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가령, 이진숙 등이 빠져나가는, 황폐해질 대로 망가진 지역 MBC의 문제는 어떻게 할 텐가? 기존의 중앙지배주의와 서울 일방주의를 넘어, 지역사회를 존중하는 균형 발전적 사장선임 형태를 제출할 수 있을까? 위험한 비정규직 스태프, 위기의 프리랜서 작가의 현실은 또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그리고, MBC 내부에 사실상 와해된 시청자 대민 접촉, 시청자 대변의 채널은 어떻게 시급히 정비·복원할 것인가?

신뢰 가는 최승호만큼 여럿의 기대가 많은 EBS의 장해랑. KBS를 대표한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언론연대 공동대표 출신의 선수다, 그는 작년 말 사장이 되자마자 박환성·김광일 피디 현안 해결에 나름 빠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시민사회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인 편이다. 그는 과연 주어진 직위의 미션을 계속 잘 수행해 갈 것인가? 고질화된 방송영역 내 독립피디 상대 갑질의 구조를 전향적으로 해소하고, EBS를 독립된 교육·문화·다큐멘터리 채널로 재건하는 일. 뉴라이트·신보수주의 정권 하 견고해진 교육부의 지배력으로부터 탈피시켜, EBS를 미래주체 재생산의 자율적 장치로 재배치하는 몫. 그 잣대에 따른 냉정한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공영방송만큼은 아니더라도 공적 저널리즘 채널로서의 책무를 여전히 회피할 수 없는 SBS에는 박정훈 사장이 있다. 예능·교양·드라마 피디를 섭렵한 그는 노조와 합의한 사장임명 동의제를 거쳐 작년 말 사장에 다시 선임되었다. 내부의 정치적 재신임을 받아냈다. 예능과 드라마 그리고 교양 모두에서 2017년 한 해 소위 ‘2049’ 시청률을 석권한 실적도 고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최종의 승부처가 대기하고 있다. 새해 새로운 보도본부장 하 쇄신노력을 경주 중인 SBS뉴스의 저널리즘 수행성 강화, 공적 책임 향상은 어찌 책임질 텐가? 그럼으로써, 지난 정권 때 붙은 정권굴종의 비판, 정권 협착의 의혹을 어떻게 떼어낼 텐가?

부담스러운 청산작업이다. 한편,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에 걸친 낙하산 사장의 멍에를 청산해야 하는 YTN에는 이미 언급한 최남수씨가 있다. 언론노동조합, YTN지부와의 타협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긴 과정을 거쳐, 자신이 작성한 칼럼 등을 통해 심각한 하자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꿰찬 행운의 사내. 그는 사장자리에 오르자마자 표정을 바꾼다. 보란 듯이 안팎과의 합의를 무효화시켜 버린다. 파경. 노사 갈등을 자초하고 사내 분열을 촉발한다. 새로 서야할 위중한 YTN을 새로운 중태로 자빠뜨린다. 미래로의 변화가 아닌, 과거로의 회귀다.

해직언론인으로부터 돌아온 노종면을 “무리한 주장을 하는 분”으로 규정하고, 약속을 지켜 상처를 봉합하고 쇄신을 서두르라는 민의를 “모두에게 강요하는 폭력”으로 매도하는 사측 대의의 사장이다. 다수 구성원, 시청자들의 기대를 기형적으로 비틀었다. 전형적 구태다. 대체 그가 대변하는 ‘사측’은 누군가? 포스트 촛불혁명의 시간, 다수의 희망을 짓밟고 자신의 말을 바꾸면서. ‘사측’의 이해관계만 쫒는 이런 대역을 제대로 된 방송사 사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회이익은 물론이고 회사평판에도 심히 해 끼치는 자격미달, 함량부족의 사장의 말로는 무엇일 수밖에 없나? 촛불은 환멸의 귀환을 위한 혁명이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렇듯 새로 얼굴 내밀거나 자리 지키는 선수들이 있다면, 반대로 자리에서 쫓겨나가는 사장들도 빠트릴 수 없다. MBC 서울의 김장겸과 지역 MBC의 이진숙 등이 그러하고, 곧 해임 의결될 게 확실한 KBS의 고대영이 그렇다. 현재는 과거 없이 성립 불가능하다. 미래의 진로는 과거의 정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작자들까지 세세히 포함하면 열전(列傳)이 지루하게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직위 박탈된/될 전직들의 명백한 하자에 관해서는 이전의 여러 글로 앞말을 대신하자. 대신에, 차라리, 지난날 태극기 게양대 아래 충성서약과 함께 업무를 개시한 연합뉴스 박노황 같은 잔존세력은 꼭 기억하는 게 맞다.

권력에 입 맞춘 부정하고 무능한 사장의 비리는 결코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방송사 전체로 파급되며, 궁극적으로는 외부 사회로도 전이된다. 그래서 비극적이며, 이를 우리는 지난 두 정권에서 몸서리치게 체험했다. 잘못된 사장은 필히 잘못된 방송(사)을 낳는다. 적폐청산이 필연인 방송사는 반드시 적폐사장 퇴진의 투쟁을 부른다. 지겨운 악순환. 반복할 텐가? 그러지 않으려면, 파경에 이른 YTN 사장 문제 잘 처리해내야 한다. ‘지배구조’가 바뀌기 전이지만, KBS 새 사장도 제대로 뽑아야 한다. 방송독립과 언론개혁을 넘어 민주주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행위자인 사장. 그 다양한 군상들의 자격, 우리가 제대로 심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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