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31일 EBS <장학퀴즈>는 인공지능 엑소브레인과 상하반기 왕중왕 김현호, 이정민 학생, 수능 만점자 윤주일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 오현민 씨와의 대결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결과는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이 2위와 160점이나 차이 나는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이 대결의 참가자였으며 서울대에 진학한 김현호 학생에게 이날의 경험은 허망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김군은 말한다. 방송 전 예비로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엑소브레인은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 준비와 몇 시간의 녹화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 진화하여 학생들을 압도했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현호 씨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경영학과 학생 다수가 선택했던 회계사란 직업은 20년 안에 없어질 직업의 1순위이다. 경영 하나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프로그래밍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까라며 고민하는 김 씨와 동기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는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불투명하다는 고민과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학과 중심의 공부를 제쳐둘 수 없기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내는 중2의 과학영재 이준서 군에게 부모들이 역사 성적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 혼란에 빠진 학생과 학부모들

[2018 신년특집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1월 7일 방영된 <SBS 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바로 이런 변화하는 세상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교육과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은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뭐길래?’란 의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듯 일자리, 즉 먹고사니즘의 변화이다. 1,2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육체적 노동 부문을 기계가 대신해갔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이제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반도체 부품 업체의 인공지능 로봇 소이어, 기존 200명이 하던 일을 소이어의 도움으로 이제 3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다.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조차도 하루 이틀 학습하면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학습 능력에 점심시간, 브레이크 타임은 물론 오버 타임까지도 가능한, 24시간 풀가동하는 소이어의 능력은 바로 미래사회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로봇의 현주소다. 일본에서는 안내, 청소, 요리 등 기존 사람 30여명이 할 일이지만 단 7명만이 필요한 로봇 호텔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8 신년특집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이런 인공지능 로봇의 대두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집약된다. 인간의 지적 활동,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바둑'. 그러나 프로 바둑기사 가운데 내로라하는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40여 년 전 유망직종이었던 전화교환원이나 버스 안내양 등이 이제 사라지고 문선공이란 직종은 그 이름조차 낯설어진 세상처럼, 이제 수십 년 내에 우리 사회 직업들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관련학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민은 바로 이런 미래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새로운 가능성의 세상

대부분의 4차 산업혁명 다큐들이 미래의 불가지론에 근거한 불안과 혼돈을 강조한 반면, 1월 7일 <SBS 스페셜>의 시선은 이와 좀 다른 지점을 포착한다.

[2018 신년특집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변화에 내던져진 인간의 현실을 기계와 인간의 달리기에 비유한다. 1,2,3차 산업혁명 역시 기존 직업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들은 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봇 공학자 오준호 씨는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을, 2차 산업혁명으로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간과 자동차의 달리기에 좌절했던 그 시대의 얼토당토않은 경쟁을 예로 든다. 즉,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그 자동차로 인해 인간의 생활이 보다 편리해진 것이 압도적인 만큼,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인간은 또한 적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막연한 불안의 대상인 인공지능, 다큐는 그 불안의 실체에 과감하게 접근한다. 화제의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 로봇으로 최초 시민권을 획득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했던, 이 오드리 헵번을 닮은 로봇을 인문학자 최진기 씨가 만나 정해진 매뉴얼 없이 대화를 나눠본다. 그 결과는? 최진기 씨는 소피아를 '동문서답의 마법사'라 여유롭게 정의 내린다. 즉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네킹을 씌워놓은 인공지능 스피커 같은 소피아는 프로그래밍된 용어가 들어있지 않은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18 신년특집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이런 다큐의 실험에 대해, MIT에서 세계 최초 4족보행 로봇을 만들어낸 로봇학자 김상진 교수는 확신을 더해준다. 그 최초의 4족보행 로봇. 하지만 정작 이 로봇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계단, 문턱, 좁은 골목 등 인간에게는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장애물들이다.

즉, 소피아와 4족보행 로봇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무시하고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적응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세상의 주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단 점이다. 프로그램된 내용의 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은 바둑을 이길 수는 있지만, 수세미를 쓰다 밥풀을 긁어내는 등 다양한 적응이 필요한 접시 닦이를 인공지능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교육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했다 해서,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되었던 코딩 교육이 2018년부터 중학교에서 의무 과정이 되었다.

코딩 조기 교육? 정작 무엇이 중헌디?

컴퓨터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사고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코딩. 중학 과정에서 의무가 된 코딩은 34시간을 이수해야만 한다. 34시간은 중학교 전체 과정에서 1%에 불과한 시간이다. 현장에서 가르치는 김현석 선생은 1주일에 한 시간 가르치는 방식의 코딩 교육은 결국 또 한 과목의 국영수가 될 뿐이라 비관한다. 그러나 현장의 비관과 다르게 유치원에서부터 코딩 교육은 붐을 이루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18 신년특집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결국 이렇게 또 하나의 선행학습이 되어가고 있는 코딩 교육 붐에 대해, 다큐는 방향을 정정한다. 그 선례로 등장한 건 바로 유투브에서 화제가 된 아빠의 샌드위치 코딩 교육. 동영상의 아빠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아이와 학습한다. 아이가 써준 매뉴얼에 따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는 아빠, 그러나 아이의 어설픈 요리 매뉴얼은 식빵 모서리에 잼을 바르는 해프닝으로 번번이 실패한다.

코딩의 코자도 꺼내지 않는 코딩 교육. 이것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진짜배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이라 데이스 홍 교수는 강조한다. 코딩의 관건은, 아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의 관건은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체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력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동시에 딜레마다. 교육입국을 앞세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던 그 세대의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시대의 교육에 먼저 한 발을 끼워 넣으려 애쓰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초조함에는 인류로 봤을 때는 진화이지만, 개인으로 봤을 때는 각자도생이라는 진화와 발전의 냉엄한 현실 인식이 기조로 깔려있다.

비감했던 기존 4차 산업혁명 다큐와 달리 <SBS스페셜>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인간을 낙관한다. 그러나 그 낙관은 잘 준비된 자의 몫이다. 다큐는 그런 우려와 초조함이 또 다른 국영수 과외 식의 닦달이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하지만 현실의 교육 제도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을 키워낸다며 고삐를 죄는 부모들의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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