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축구대표팀 골키퍼 포지션에서 변화 기류가 많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부동의 주전' 이운재(수원)에서 '2인자' 정성룡(성남)으로 조금씩 무게추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 2008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던 이운재였지만 '경기력 저하 논란'으로 주춤한 사이 정성룡이 치고 올라오면서 주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모든 포지션들이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서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까지 그대로 갈 것으로 예상됐던 골키퍼 자리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셈입니다.

정성룡은 에콰도르전에서 지난 2008년 10월, 아랍에미리트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1년 7개월 만에 선발 출장해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데 이어 일본과의 평가전에서도 상대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며 또 한 번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쳐 '경쟁력있는 선수'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경기 휘슬이 울릴 때까지 전혀 흔들림 없는 집중력과 탄탄한 선방 능력으로 골문을 내주지 않았고, 자신의 강점인 필드 플레이어에게 내주는 롱킥에서도 역시 강한 모습을 보이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에서도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없었고, 문전 혼전 중에도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키핑을 선보이며 두 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 태극전사들이 27일 새벽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캄플훈련구장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위한 담금질을 시작한 가운데 이운재와 정성룡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당초 허정무 감독은 정성룡을 '경기력 저하 논란'이 일고 있는 이운재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차원으로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정성룡이 두 경기 연속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운재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놓고 봤을 때 정성룡의 경쟁력이 이운재를 능가하는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K-리그에서 0점대(0.91)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정성룡은 어떤 상대에도 전혀 기복 없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경기력을 잘 보여주는 장점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특히 190cm의 가장 큰 체격을 가져 공중볼이나 파워 면에서 확실히 다른 선수들보다 우위에 있고, 팔이 길어 선방도 잘 하는 선수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미 청소년 월드컵, 베이징 올림픽 등 큰 무대에 잇따라 출전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이기도 한 그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장점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그리스, 파워풀하고 스피디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투입돼도 크게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정감 있고 경험 많은 이운재라도 최근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이운재보다는 정성룡'에 좀 더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게 더 강합니다.

무엇보다 정성룡의 투입은 남아공월드컵 직후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이운재 이후 발생할 골키퍼 경쟁에도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단 한 경기라도 월드컵 본선 경기에 뜀으로 해서 그 선수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그것이 밑거름 돼 이운재를 능가할 만 한 좋은 골키퍼가 나온다면 그만큼 골키퍼 포지션에 대해 고민할 시간도 더욱 덜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1994년 미국월드컵 때 최인영의 뒤를 이어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운재가 독일전 후반전에 교체 투입돼 좋은 활약을 보이고 이후 2002, 2006년 월드컵에서 '부동의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던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정성룡이 보완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볼처리가 여전히 미숙하고, 뒤에서 수비진을 리드하는 능력 또한 '착한 성격'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다소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측면 크로스 볼을 놓치거나 두세차례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것 또한 본선에서 보여줘서는 안 될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허정무 감독의 마음 또한 흡족하게 할 만큼 정성룡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정성룡의 가세로 불을 지핀 골키퍼 경쟁에서 과연 살아남는 선수는 누가 될 것인지, 선배와 후배의 정정당당한 경쟁에 대한 앞으로의 상황들을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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