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논의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양당 모두에서 원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들 자기 살 길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민의당 중재파가 제시한 중재안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재안의 내용은 ‘안철수 대표의 조기 사퇴와 중립 원외인사를 통한 전당대회 관리’로 압축할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중재안 수용 거부 의사를 에둘러 밝혔다. 중재에 나선 사람들도 결국 통합을 하자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다. 통합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안철수 대표가 사퇴를 결단하지 않을 거라며 중재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양측이 모두 중재안을 거부하는 상황은 예정된 결과다. 그럼에도 ‘중재파’가 중재안을 제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재안이 거부될 경우에 ‘중재파’에 속하는 사람들도 결국 통합 찬성이냐 반대냐의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박지원 의원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 등에서 “꽃가마를 태워줘도 (통합 정당에는) 안 간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역으로 이해하자면 결국 중요한 당직이든 어떤 정치적 지분이든 꽃가마를 태워 줄 테니 통합에 찬성하라는 제안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의 대상은 통합 반대 입장이 명확한 사람보다는 중재를 하겠다는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통합파의 제안 내용이 ‘꽃가마’라면 반대파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선거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간 전남지사 출마를 기정사실화 해온 박지원 의원은 최근엔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분당이 될 경우 당선가능성이 하락할 거라는 현실 판단도 있겠지만 어떤 ‘양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할 수도 있다.

7일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왼쪽), 안철수 대표가 전남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여수마라톤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이니 동상이몽과 아전인수가 난무한다. 새로운 통합정당에서 유력한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손학규 전 의원은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학규 전 의원 주장의 핵심은 호남 지역 유권자들을 설득해 통합에 찬성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데 안철수 대표와 현재 호남 중진들의 방식은 이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이라면 호남 지역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적임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데 결국 그게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양당 통합에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간의 정치 논리로 보면 바른정당은 결국 보수정치의 영역에 있고 영남이라는 지역기반이 분명하다.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굳이 선호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거나 명실상부하게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본다면, 그 당의 생존이 걸렸다는 점에서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지난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 의원을 대거 탄생시켜 현재의 구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그것은 우리 정치에서 제3세력의 필요성이나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 보다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는 절실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은 그러한 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인사의 경우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제3세력을 변함없이 지지해야 집권 세력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하지만 그것은 ‘호남홀대론’이 위력을 발휘할 때의 이야기이며 결국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주장일 뿐이다.

손학규 전 의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양당통합의 당위를 말할 때 DJP연합을 예로 드는데 이것도 과연 맞는 이야기인지 따져볼 문제다. DJP연합은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의 자민련을 말하자면 ‘견인’한 사례이다. 내각제 개헌과 일부 장관 지명권을 보장함으로써 지지를 획득한 것인데, 물론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가 어떻게 됐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DJP연합의 붕괴 원인을 내각제 개헌의 무산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지만 그 이전에 양대 세력의 정책적 이견이 결국 연합공천 무산으로 이어진 여파가 컸다는 점을 볼 필요도 있다.

현재 양당통합 국면에서 누가 누구를 견인하고 있는가. 바른정당은 무언가를 자꾸 요구하고 안철수 대표 쪽은 대개 그걸 받아들인다. 대북정책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를 바꾸라거나 누구는 배제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안철수 대표가 통합을 위해 선물을 싸들고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를 반복 방문하는 모양새라면, 유승민 대표 쪽은 좀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유승민 대표는 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통합한다고 최종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서 “제가 말하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에 국민의당 의원들 중 동의하는 분도 상당수 있지만 동의 못하는 분도 있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을 함께 하는 게 맞다. 통합신당 정체성을 분명히 정리하고, 찬성 못하는 분들은 정리가 돼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주재 사무처 당직자 간담회에 앞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발언은 국민의당과 통합 자체에 대한 견해 표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른정당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감안한 정치적 발언이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유한국당으로의 추가 복당 움직임 같은 문제다. 언론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세연, 이학재 의원의 추가 복당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핵심 고민은 결국 지방선거 문제인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경우 경기도지사 선거가 현재 구도로 치러지면 승산이 크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적어도 여당과의 1대1 구도에 가까워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만 통합할 게 아니라 자유한국당과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이 어떤 새로운 정치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형태가 분명하다면 각자의 정치적 계산속에서 오직 원심력만 확대되는 현재의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통합의 당위로 다당제 구도와 제3세력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이게 중요한 것은 ‘대안적 정치’를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 현재의 해법을 더 잘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의 양당통합 논의는 무엇을 해야 대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제3세력이 기성의 양당 사이에서 더 잘 중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정도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을 잡는 것이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권력을 잡지 않더라도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래서 언제나 명분과 실리가 모두 중요한 것이다. 과연 이런 통합 논의가 한국 정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겠는가? 꼭 안철수 대표 뿐만이 아니라 이 국면에 한 마디씩 보태는 모든 사람들이 돌아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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