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에 대한 진상이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면서다.

애초 의혹 제기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 의해 이뤄졌다. 문재인 정권이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정치보복에 열을 올리다가 아랍에미리트 왕정의 역린을 건드린 것 아니냐는 거였다. 이 의혹 제기는 김성태 원내대표 취임 직후 이뤄졌기 때문에 두 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첫 번째는 대여투쟁의 의지를 명확히 밝히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국회 운영위원장 문제라는 다소 실리적인 것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바로 이 의혹을 방어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운영위원장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던진 의혹을 확대해 판을 키운 것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이 문제를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가져다 붙였다. 무리한 정책을 밀어 붙이고 정치보복에 열을 올리다 보니 외교를 망쳤고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는 숨겼다는 식이었다. 말이 말을 만들고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하루는 청와대 해명이 석연찮다고 비난하고, 또 하루는 문재인 정권이 역시 운동권 근성을 못 버렸다고 하고, 또 어느 날은 정치보복은 이제 그만두자고 하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식 판 키우기가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오른쪽)와 김태흠 최고위원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이어지는 보도를 보면 이런 변죽 울리기 식 의혹제기는 분명한 근거를 갖고 제기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새해 나온 관련 보도들은 아랍에미리트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급파됐다는 것에 대해선 진단이 일치하지만 이 문제가 정치보복이나 탈원전 정책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핵심은 한국 정부와 아랍에미리트 간의 군사협력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2일 SBS는 이미 국방부가 정권 교체 이전부터 아랍에미리트에 파견된 아크 부대의 철수 등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3일 한국일보는 2018년 아크부대 철수 계획이 정권교체 이후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아랍에미리트 입장에선 원전을 수주할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군사협력 확대를 일종의 패키지로 약속 받았는데 이게 무위로 돌아갈 상황이 된 것이어서 반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국방부는 아크 부대의 성격이나 역할을 조정할 필요성을 논의한 일은 있지만 철수는 고려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사실 이 해명은 어쨌든 파병된 군의 현 상태를 유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논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랍에미리트 군대의 현대화 등을 추진하고 있는 전투병의 역할을 대테러 등 평화유지나 건설 지원 등으로 바꾼다고 해도 아랍에미리트 입장에선 일종의 약속 위반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아랍에미리트에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대해선 이미 보수정권 시기의 국회에서 몇 차례 문제가 된 바 있다. 예를 들면 2010년 11월 국회 국방위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의원이 이명박 정부와 아랍에미리트 사이의 비공개 양해각서를 문제 삼은 대목 등이 그렇다.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 외교안보수석 등만 공유하고 있는 비밀 합의 문건이 있으니 그 내용을 밝히라는 것인데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은 그런 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당시 군사전문잡지 등에서 일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최근 라디오인터뷰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원전 수주 대가로 필요 이상의 군사협력 약속을 해줬고 정권이 바뀐 후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을 아랍에미리트가 우려하자 박근혜 정부가 비밀각서를 써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대 의원의 주장은 최근 방송인으로 활약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JTBC 썰전 등의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바와 유사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4일자 지면에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의 주장을 빌어 양국 정부가 군사협정을 체결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이므로 김종대 의원의 주장과 배치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입수’했다고 주장하는 이 협정 체결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됐고 당시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앞서 유승민 의원과 김종대 의원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보다 진전된 내용의 어떤 비밀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일보의 보도는 ‘물타기’의 성격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 (연합뉴스)

중동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다. 아랍에미리트와의 군사협력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오바마 정권이 이란과 핵 협상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시도한 시점에서는 이 문제의 인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아랍에미리트는 종교적 정치체제적 이유로 이란과 적대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사실상 아랍에미리트의 군 현대화를 ‘아웃소싱’ 하고 있다는 주장 등이 쟁점화 되면 좋을 것이 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이란 시장 진출 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란 내 반정부 시위는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오바마 정권과의 핵 협상을 통해 동결이 풀린 돈이 생산에 투입되지 않고 해외의 시아파 세력 지원에 쓰였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이란식 신정을 규정하는 헌법을 수호하는 성직자들은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대다수 시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이런 인식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오바마 정권의 핵 합의 무효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와의 군사협력과 아크 부대 문제를 다루기 매우 어려워진다. 그대로 둘 수도 없고 치워버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게 이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나름대로 자제하고 있는 것은 더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국회 운영위원장이라는 실리를 지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출구전략만 남은 셈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일 JTBC의 신년 토론회에 출연해 청와대가 흘려준 정보를 들고 김종대 의원이 의혹 제기를 했다는 듯이 표현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네티즌들에게는 ‘혼수성태’로 불릴 만큼 수세에 몰린 토론을 보여줬으나 자기 지지층이 활용할 수 있는 논리는 충분히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그들이 그토록 중시한다던 국익이 걸린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의 조정을 위해 써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쟁점화는 자신들이 해놓고 그 책임은 김종대 의원 등에게 뒤집어씌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와 특수관계로 볼 수 있는 월간조선은 2일 지난달 이 지면에 실린 김성태 원내대표 비판 글의 일부를 인용해 김종대 의원을 비판하는 기사를 인터넷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불성실한 것일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보수세력 전체가 이런 불성실과 비윤리로 일관해서 과연 보수정치의 혁신과 부활이 제대로 되겠는가. 지방선거를 기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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