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액션 l 안경남] 불과 한 시즌 만에 유럽 챔피언의 성격이 바뀌었다. 뷰티풀풋볼로 유럽을 호령했던 바르셀로나 대신 안티풋볼의 인터밀란(이하 인테르)이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테르의 수비축구를 비난할 순 없다. 단지 방식이 달랐을 뿐, 인테르는 유럽에서 가장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첼시(EPL 챔피언), 바르셀로나(라 리가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 챔피언)을 차례로 격파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인테르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만한 충분한 자격을 보여줬고, 덕분에 이탈리아 세리에A는 유럽랭킹 3위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인테르 vs 뮌헨, 선발 라인업

양 팀 모두 선발 라인업에 큰 변화는 없었다. 인테르는 디에고 밀리토를 최전방에, 웨슬리 슈나이더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티아고 모타가 빠진 중원은 하비에르 자네티가 메웠고, 크리스티안 키부가 왼쪽 풀백으로 나섰다. 좌우 측면에 배치된 고란 판테프와 사무엘 에투는 중앙의 슈나이더 보다 깊숙이 위치하며 수비에 치중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팀의 에이스 아르옌 로벤을 우측 깊숙이 배치했고 왼쪽에는 하밋 알틴톱을 선발 출전시켰다. 최전방에는 이바카 올리치와 토마스 뮐러가 위치했는데, 뮐러의 경우 중앙으로 자주 빠지며 경기를 펼쳤다. 기본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유지했으나 뮐러의 위치에 따라 4-2-3-1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뮌헨을 침묵시킨 인테르의 수비력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에서 수비축구의 진수를 선보였던 인테르는 뮌헨과의 결승에서도 수비에 중점을 둔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다. 결과적으로 밀리토의 두 골이 인테르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그 원동력이 된 것은 수비였다. 우선 수비수들은 자기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효과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평소 공격 가담이 많았던 마이콘도 이날만큼은 수비수로서 역할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네티와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수비지역 깊숙이 내려와 방어벽을 더욱 두텁게 형성했는데, 그로인해 뮐러와 슈바인슈타이거는 중앙에서 좀처럼 공간을 찾지 못했다. 뮌헨의 공격이 대부분 측면에서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뮌헨의 측면 공략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뮌헨은 경기 초반 에투와 판데프의 수비가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측면 풀백을 전진시키며 많은 크로스를 시도했지만 제공권 싸움에서 밀리며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선발 출전한 올리치와 뮐러 모두 루시우와 월터 사무엘과의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후반 신장이 좋은 마리오 고메즈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투입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뮌헨의 크로스 정확도 또한 높지 못했는데, 이는 로벤과 알틴톱이 자신의 주발과 반대되는 위치에서 크로스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로벤의 경우, 과거와 비교해 오른발을 쓰는 횟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왼발 보다 오른발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선수다. 결과적으로 로벤과 알틴톱 모두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슈팅을 날리는 동선에선 장점을 보였지만,(인테르는 두 선수의 이러한 성향을 완벽히 파악했고, 슈팅 각도를 줄여 정확도를 떨어트렸다)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상황에선 그렇지 못했다.

물론 인테르의 수비가 90분 내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인테르는 뮐러에게 3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허용했으며, 전반 막판 잠깐이었지만 마르크 반 봄멜이 공격지역으로 전진하자 수비에 허점을 보이기도 했다. 인테르는 개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에 가까운 수비를 펼쳤는데, 이 때문에 예상 밖의 선수가 공격에 가담할 때마다 공간에 균열에 발생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르셀로나의 헤라드 피케였다. 준결승 당시 피케는 1,2차전 모두 후반 막판 공격 가담에 나섰는데 이때 인테르의 수비진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원샷원킬’ 밀리토 vs ‘무득점’ 뮐러

밀리토와 뮐러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라 리가와 세리에A 무대에서 수년간 활약한 밀리토와 이제 갓 뮌헨에서 꽃을 피기 시작한 뮐러를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두 선수의 결정력이 이번 결승전의 승부를 가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뮐러는 이날 뮌헨에서 가장 득점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사실 올 시즌 뮐러는 득점 보단 팀플레이에 더 능한 선수였다. 그리고 루이스 반 할 감독 역시 뮐러의 그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의 모습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더 좋은 공격수로 성장하긴 위해선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반면 밀리토는 엄청난 결정력을 선보였다. 전반 35분 직접 헤딩 경합에 나서 볼을 따낸 뒤 슈나이더의 전진패스를 받아 여유 있게 상대 골망을 흔들었고, 후반 70분에는 환상적인 개인기와 슈팅으로 반 부이텐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에투의 경우, 아쉽게도 3연속 결승전 득점에 실패했지만 수비적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며 인테르가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바르셀로나 시절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주제 무리뉴의 선수단 장악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날 에투는 기본적으로 수비에 중점을 둔 채 공격시 빠른 발을 활용해 밀리토에게 집중된 수비를 적절히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는 두 번째 득점 장면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는데, 밀리토에게 패스를 연결한 뒤 중앙으로 쇄도하며 데미첼리스의 시선을 빼앗았고 그로인해 밀리토는 반 부이텐과 일대일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인테르 공격의 핵심, 슈나이더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인테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슈나이더다. 과거 인테르의 가장 큰 단점은 창의력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와 전투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는 즐비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플레이메이커가 없었다. 슈나이더는 인테르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줬는데, 이번 결승전에서도 그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냈다. 이날 슈나이더는 밀리토의 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처진 공격수처럼 움직였다. 슈나이더는 좌우 측면에 배치된 판데프와 에투 보다 전진된 위치에서 활동했는데, 사실상의 프리롤 역할을 부여받으며 뮌헨의 수비진을 흔들어 놓았다. 슈나이더가 이처럼 손쉽게 공격 전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슈바인슈타이거와 반 봄멜이 생각 보다 높게 전진하며 자네티와 캄비아소를 상대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테르는 미드필더 싸움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뮌헨은 이를 커버하기 위해 반 부이텐과 데미첼리스 중 한명을 다소 전진시키며 슈나이더를 견제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밀리토가 자유로워지는 부작용 낳고 말았다. 뮌헨의 두 센터백이 딜레마 빠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인테르의 선제골은 이날 뮌헨이 슈나이더와 밀리토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방으로 볼이 길게 연결됐고, 밀리토가 볼을 따내기 위해 내려오자 데미첼리스가 따라 붙였다. 이때 반 부이텐은 데미첼리스 뒤에서 밀리토의 2차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처져있었는데, 이로 인해 슈나이더에게 상당히 많은 공간이 생겼고 밀리토에게 정확한 전진패스가 연결되며 이날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이 터졌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전방의 뮐러가 자네티와 캄비아소 중 한명을 집중 견제하고, 반 봄멜이 좀 더 내려와 슈나이더를 상대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챔피언을 제압한 진정한 챔피언

인테르의 이번 우승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보여준 인테르의 극단적인 수비축구를 지적한다. 하지만 인테르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적절한 상황과 경기에 따라 유기적인 대처를 했을 뿐이며, 이겨야만 살아남는 토너먼트에서 영리한 축구를 펼쳤기 때문이다. 물론 인테르가 바르셀로나, 뮌헨과의 경기에서 상당히 저조한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점유율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또한 그것을 가능케 한 무리뉴의 전술적 선택 또한 칭찬받아야만 부분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의 조나단 윌슨은 점유율의 포기가 축구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어쨌든 무리뉴는 겨우 두 시즌 만에 완벽한 ‘무리뉴의 팀’을 만들며 유럽을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확실히 무리뉴는 자신만의 팀을 만드는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포르투와 첼시 그리고 인테르까지 자신의 축구 철학을 완벽히 실현하며 팀을 정상까지 이끌었기 때문이다. (비록 첼시 시절 챔피언스리그 정상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실력 보단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문제는 다음시즌이다.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무리뉴와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인테르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다음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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