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가 역사의 익숙한 진행으로 돌아왔다. 등장인물들이 더는 위선의 베일에 숨지 않고 아주 명확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봐야 장희빈 하나뿐인 듯하지만 장희빈의 제자리 찾기를 통해서 어쩌면 대기상태였던 주변 인물들도 이차성징을 겪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역시나 숙종이다. 보기에는 바보 같겠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동이의 흐름은 인현왕후의 폐위와 장희빈의 내명부 최고지위 등극의 대세를 타고 있다. 이 순간만은 장희빈이 절대적인 강자일 수밖에 없고 궁극의 악으로 그려진다. 그래야만 드라마의 선악구조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비의 병세가 위중했을 때에 장희빈을 위해 간병하던 인현왕후를 내보낸 숙종의 무리한 오버까지 끌고 가는 상황도 벌어지게 된 것이다. 어쩔 도리 없는 일이지만 단지 애칭일 뿐이었던 허당 숙종은 진실을 꿰뚫어볼 혜안을 갖지 못한 진짜 허당 임금님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달콤한 활약으로 동이의 시청률을 떠받쳤던 숙종에 대해서 가혹한 처사지만 조강지처가 폐서인이 되는 마당에 남편 숙종이 그 정도 고통은 받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차피 대비의 시해 아니 중전과 장희빈의 대결의 진정한 본색은 당파싸움의 대리전이었기 때문에 결국 숙종이 펼친 남인 중용정책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결과가 되었다.

나중에야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그 깨달음을 위해서 중전을 폐위하고 궁극적으로 생모의 원수를 가려내지 못하는 불효마저 저지른 숙종의 권위 추락은 인현왕후의 폐위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당장은 모든 대세를 거머쥔 장희빈의 뜻대로 거침없이 판을 장악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지금까지 다소 느긋하게 즐겨왔던 시청자들을 애달게 하면서 감정을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또 한편으로 뻔히 실패할 것을 알았지만 동이와 서용기가 합심한 수사가 어떤 결실을 맺지 않을까 은근히 바라며 관심을 가졌던 가짜 어음의 발행자인 상단 서기가 살해당하면서 실낱같은 희망마저 놓아야 했다. 그러나 서기가 살아있어서는 대비시해사건의 주점이 잡히고, 그렇게 된다면 동이는 역사를 통째로 뒤집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니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차피 동이의 노력은 장희빈과의 완전한 결별과 동시에 인현왕후와의 인연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이는 마지막까지 희망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모든 정황이 중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의금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를 멈추게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들고 장희재를 찾아 나섰다. 동이가 내놓은 카드는 죽은 서기를 살아있다는 블러핑이었다.

장희재는 악랄한 의지로 중전을 모함을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에 옮긴 영민한 존재이다. 그런 장희재지만 유일한 실수이자 아킬레스건은 상단 서기를 직접 처리하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장희재와 장희빈 나아가 남인 전체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동이가 쥔 확실한 조커였다.

그런 동이의 도박은 잘만 먹히면 수사를 멈출 수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장희재를 혼란스럽게 해서 잠시의 시간이나마 벌 수 있는 좋은 한수였다. 결과는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이긴 것처럼 동이가 산전수전 모두 겪은 장희재를 농락한 통쾌한 한판승이었다.

비록 장희빈의 결연한 의지와 때마침 인현왕후 사가의 한심한 인물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을 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어 버렸지만 한순간이나마 장희재를 허당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통쾌한 일이었다. 또한 그 틈을 타 죽은 서기가 남긴 어음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감찰부로 달려갔지만 때마침 대비가 숨을 거둠으로써 대비시해사건은 중전폐위의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랐던 역사 뒤집기는 역시나 무리한 바람이었고 다분히 허무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저 당하지만 않았다는 점에서 작은 위안을 삼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편, 대비의 운명 소식을 전하는 장희빈의 나인과 상궁은 기쁨의 웃음을 지었는데 정작 장희빈은 오히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궁극의 악으로 변신하기 전의 장옥정의 본심이 남아있는 갈등이었고 죄책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장희빈에게 인간의 도리는 남아있었다. 그런 모습을 굳이 남긴 이유는 장희재를 농락한 일과 더불어 숙종이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한 여자로서의 동이에 대한 질투로 인해 그 마지막 남은 선한 면마저 버리게 될 장희빈의 인간적인 갈등을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라 짐작케 한다. 장희빈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의지가 엿보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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