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현장에서 본 두 골 모두 짜릿하고 대단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점차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허정무호가 '두 번 다시 일본은 없다'고 선언하며 2-0 쾌승을 거두고 A매치 4연승으로 기분 좋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짜임새 있는 조직력과 날카로운 공격으로 일본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친 한국은 점점 진화하는 경기력이 새삼 주목되면서 남아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났습니다. 원정에서 또 한 번 일본을 잠재우면서 선수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고, 일본 기자들조차 박수를 보낼 만큼 한국 축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일본 축구팬들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최정예를 내보냈다면서 너무나 무기력한 경기를 벌인 끝에 또 한 번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며, 월드컵 개막을 18일 앞두고 제대로 비상불이 켜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날 경기가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에서 열린 마지막 A매치로, 일본 입장에서는 대표팀 출정식이 예정돼 있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서 치를 수도 있었지만 완패로 전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단 한 번의 패배에 많은 것을 잃고, 반대로 한국은 값진 승리에 많은 것을 얻었던 셈입니다.

▲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한일 응원단
어떻게 기회가 생겨서 블로거는 이번 한일전을 현장 관전, 취재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비행기를 타고 어렵게 돌고 돌아 그야말로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태극전사들의 핵심 자원인 '양박(朴)', 박지성(맨유), 박주영(AS 모나코)의 연속 득점은 청량제 같은 느낌을 선사하며 그간 쌓인 피로가 확 풀리는 듯 했습니다. 반면 5만 7천여 울트라 니폰 팬들은 자국 선수들의 부진에 전혀 홈팬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며 양적에서는 몰라도 실속 면에서 붉은악마에 또 한 번 뒤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국 팀의 패배로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이며 침묵에 빠진 울트라 니폰, 그리고 일본 팬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어땠는지, 한일전의 전반적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정리해 봤습니다.

▲ 우라와미소노역 출구 풍경. 기둥에 우라와 레즈를 응원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번 경기가 열린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건립된 전용 경기장으로 일본 최대를 자랑합니다. 일본 최대의 인기 구단인 우라와 레즈의 홈구장이기에 경기장 곳곳마다 우라와 레즈와 관련한 다양한 응원 문구, 사진 등을 볼 수 있었는데요. '축구 도시'답게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경기장을 찾았지만 꽤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역 주변에 진을 쳐 상당한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선 어쩌다 볼 수 있었던 일본대표팀의 파란 유니폼을 여기서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점에서 새삼 '아, 정말 일본에 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에서 약 10-15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 우라와미소노역에는 일본대표팀과 관련한 각종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방송국에서 만든 한일전 영상(사진 아래)에 한국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팀'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일본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날 붉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펼친 '소수의' 일본 팬들도 볼 수 있었는데 박지성, 안정환 같은 선수들을 한국팀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 일본대표팀 머플러
▲ 방송사 촬영중
▲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일본 팬들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여러개 출구가 있는 우리나라 서울월드컵경기장역과 다르게 우라와미소노역은 사이타마 경기장으로 향하는 출구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보니 길을 따라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했는데요. 가는 중간에 멕시코, 그리스, 중국 음식 등 다양한 음식들이 우리식으로 치면 포장마차 형태로 판매를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한국 음식을 파는 부스도 2개나 볼 수 있었는데 꽤 상당한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고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를 뒤로 하고 약 10여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사이타마 스타디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 주변에는 일본축구협회 스폰서 업체들의 홍보 부스와 거리 카페 형식의 식당이 자리를 잡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출정식에 사용할 대형 통천이 몇 개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일본대표팀의 선전과 2022년 월드컵 유치를 기원하는 다양한 문구를 담은 통천, 일본 대표팀의 이미지가 새겨진 통천 등 흥미로운 내용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일본대표팀 관련 상품 판매, 이벤트 등을 즐기는 사람들로 각 부스가 북적이며 월드컵 출정식다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만들어진 듯 했습니다. 적어도 경기 시작 전 풍경은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었습니다.

▲ 사이타마 스타디움 앞에서
▲ 일본대표팀 선수들의 이미지가 새겨진 대형 통천
비교적 여유 있게 경기장을 찾아 국내 경기장을 찾을 때처럼 주변 풍경도 둘러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보려 했지만 이곳은 달랐습니다. 프레스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함께 갔던 사진 블로거 님께 몇몇 사진들을 부탁드리긴 했지만 경기장 내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 아쉬움을 달래준 것은 역시 우리 태극전사들의 화끈한 득점포였습니다. 일방적인 응원을 펼친 울트라 니폰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빨리 잠재우기 위해 우리 선수들은 초반부터 적극적인 몸놀림을 선보였고, 시작 단 5분 만에 박지성이 통쾌한 땅볼 중거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사이타마 경기장을 침묵 속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붉은악마의 응원이 기세를 올리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 역시 일본을 더욱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시작 전 펼쳐졌던 축제 분위기는 그야말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전반을 마치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바깥을 나오면서 혹 울트라 니폰 응원단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한 번 담아보려 했습니다. 역시나 실망감들로 가득한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정해진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면서 답답함을 표출해낸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엔 일본대표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담겨져 있었고,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답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며 답답함을 표출하고 있는 일본팬들. 정해진 공간이 모자라 줄을 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후반에도 한국의 월등한 경기력과 답답한 일본의 경기력이 대조를 이루면서 관중들의 함성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붉은악마의 응원 기세는 반대로 더욱 높아져만 갔습니다. 결국 종료 직전 박주영이 패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면서 지난 2월에 이어 또다시 두 골 차로 벌어지자 일본 관중들은 마치 체념했다는 듯이 출정식을 보지도 않고 떠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사이타마'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나타났습니다. 정말 많은 취재진이 인터뷰장을 찾았지만 오카다 다케시 일본 감독을 향한 냉혹한 시선은 거둘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반면 허정무 감독 기자회견에서는 모두 끝난 후, 박수를 치는 일본 기자들이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국 감독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불신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 경기 종료 40분 후 풍경. 출정식도 끝난지 얼마 안 됐지만 일찌감치 귀가길에 오른 사람들이 많아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 종료 40분 후 풍경. 출정식도 끝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일찌감치 귀가길에 오른 사람들이 많아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마치면 서울에서는 우리 붉은악마들이 신명나는 뒷풀이 응원으로 경기의 감동을 자아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이겼으면 어느 정도 재미있게 뒷풀이 응원을 했을 수도 있는 울트라 니폰, 그리고 일본 팬들은 경기 종료 후 단 30-40분 만에 조용히 경기장을 모두 빠져나와 경기 전에 보였던 축제분위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원래 일본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차분하게 집에 돌아간다고 하지만 경기 전, 그리고 경기 시작 5분까지 보였던 그 열기가 온데간데없었던 점은 자국 대표팀에 대한 일본팬들의 불신이 이번 경기 패배로 더욱 높아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라이벌은 없다'면서 그야말로 어떻게 하면 아시아 팀이 좋은 축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일본에 한 수 가르쳐 준 한국 축구.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원정 취재였음에도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기세를 이어 태극전사들의 상승세가 본선에도 이어져서 또 하나의 신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많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던 한일전이었습니다.

▲ 경기 직후 발행된 일본 언론 호외
▲ 일본에서 만든 한일전 홍보 책자. 사무라이 블루라는 대표팀 애칭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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